도자·회화·금속·목공예 1500점
先史부터 근대까지 한자리에
'수월관음도' 등 보물 4점 포함
서울 한강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 열리고 있는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은 전시품들의 미감과 가치뿐만 아니라 파격적 전시 구성까지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이 50여 년간 수집해온 다양한 고미술품 가운데 도자기와 회화, 금속 및 목공예품 등 150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자리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창업주 서성환 회장(1924~2003)과 서경배 회장의 대를 이은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서성환 회장은 10여 년의 준비 끝에 1979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인 ‘태평양 화장사관’을 열었고, 1981년에는 다예관(茶藝館)도 개관했다. 이후 태평양박물관, 디아모레뮤지엄 등으로 변화하다 2018년 용산 신본사에 새로 개관한 것이 APMA다.
개관 후 고미술 소장품 전반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토기와 도자기류, 서화, 장신구, 금속 및 목공예, 목가구, 섬유와 복식 등 다양한 장르의 소장품을 내놓았다. 백자대호를 비롯해 일본에서 환수해온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보물 제1426호), 쪽빛의 감지에 은가루로 화엄경을 필사한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보물 제1559호), ‘분청사기 인화문사각편병’(보물 제1450호) 등 보물 4점도 포함돼 있다. 전시장은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품 크기, 모양, 기능 등을 고려해 각각의 전시실 분위기를 다르게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회화 작품을 전시한 1전시실은 작품 특성에 맞게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긴 통로와 여러 개의 작은 광장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10㎝ 거리에서 회화 작품을 보니 필선의 흐름과 세밀한 묘사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전시장 입구의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을 지나 회화 공간에 들어서면 장대한 병풍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신선들의 수장인 서왕모가 곤륜산 요지(瑤池)에서 벌인 연회를 화려한 채색화로 그린 ‘요지연도 8폭 병풍’은 오랜 보존처리를 마치고 처음 공개하는 작품. 2018년 ‘조선, 병풍의 나라’ 기획전에서 호평을 받았던 ‘고종임인진연도 8폭병풍’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 ‘해상군선도’ ‘십장생도’ 등이 꼬리를 문다. 2~3전시실에는 500여 점의 도자기가 대거 등장한다. 청자, 백자, 분청, 토기 등을 섹션별로 커다란 전시대 위에 모았다. 철망으로 섹션을 분리해 가까이에서 유물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밝은 조명 아래에서 수많은 도자기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은 특별한 체험이다.
도자실을 지나면 근대기에 제작돼 혼례에 사용했던 사인교(가마)가 전시돼 있다. 사인교는 이동의 수단이라는 점 외에 목공예품으로서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어서 가마를 설치작품처럼 전시해 가마의 구조는 물론 조각, 솜씨, 장식 그림 등을 세밀히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장신구류를 중심으로 한 금속·섬유공예품 전시도 독특하다. 작품의 특징에 따라 가까이서, 멀리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노리개, 은장도, 비녀 등 세밀한 장식이 돋보이는 유물들은 진열장 속 평면 대신 벽면에 부착해 관람객이 최대한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금귀걸이, 옥 장식품 등을 긴 사각형의 독립된 유리상자에 전시해 관람객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꼼꼼한 솜씨와 다채로운 색상이 조화로운 섬유공예품들은 선조들의 미감을 엿보게 한다.
마지막 6전시실은 전통공예 가운데 주거와 실생활에 밀접했던 반닫이, 장, 농, 탁자 등의 목가구와 떡살, 소반 등의 목공예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가구를 나란히 배치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전통 목가구의 현대적 조형감각을 재발견하도록 연출한 점이 돋보인다. 그림의 액자처럼 틀을 만들어 각각의 작품을 배치했다. 맞은편 벽에는 소반과 떡살, 다식판 등의 목공예품을 무더기로 걸어둬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온라인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할 수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