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11일 오전 8시 8분(한국시간)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 우주기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아리안 로켓 'V52'에 실려 발사대를 떠난 우리별 1호는 발사 24분 만에 지상 1천300㎞ 상공의 궤도에 진입했다.

발사 11시간 27분만인 오후 7시 35분께 우리별 1호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지구국에 첫 신호를 보내왔고, 지구국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나라에서 우주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첫 번째 사진 속 검은 직육면체가 바로 발사 10일 전 촬영된 우리별 1호다.

무게 48.6㎏, 크기 352x356x670㎜의 소형 과학위성으로, 초속 8㎞의 속도로 하루 13회 지구를 돌면서 지구 표면 촬영, 우주선(線) 측정, 통신 및 음성방송에 관한 실험 등을 위해 제작됐다.

우리별 1호의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22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됐다.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지 35년 만이었다.

우리별 1호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영국 서리(Surrey) 대학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제작했고, 부품도 모두 영국에서 조달해 '남의 별'이란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9월 발사된 '우리별 2호'를 시작으로 우리 기술 및 부품 적용을 늘려가면서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은 이런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별 1호는 지표면 촬영, 남극 세종기지와 한국 간 정보 송수신, 우주궤도상 방사능 종류와 세기 측정, 지상과 위성 간 우리말 방송실험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예상 수명이 5년이었지만 3년 더 역할을 수행하다 2000년 배터리의 성능이 다하면서 결국 임무를 마감했다.

우리나라는 우리별 1호의 발사를 토대로 이후 '무궁화위성 1호'(1995), '아리랑 1호'(1999), '과학기술위성 1호'(2003), '나로호'(2013) 등을 우주로 쏘아 올렸고, 현재는 가까운 미래에 달 탐사를 수행할 궤도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