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의 팝아티스트 마리 킴 개인전에 전시된 ‘생명의 나무’.  가나아트센터 제공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의 팝아티스트 마리 킴 개인전에 전시된 ‘생명의 나무’. 가나아트센터 제공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우수 어린 눈빛,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양어깨에서 가슴으로 늘어뜨린 갈래머리, 진주 같은 보석으로 치장한 머리와 가슴. 르네상스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금발의 젊은 여인 옆얼굴을 그린 ‘이상적 여인의 초상’이다. 그런데 그림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다른 요소들은 똑같은데 커다란 눈망울의 인형 같은 소녀 캐릭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팝아티스트 마리 킴 개인전 ‘Masterpiece-Immortal Beloved’에 전시된, 원작과 동명의 작품이다. 왕눈이 소녀 캐릭터는 마리 킴이 자신의 분신처럼 만들어낸 ‘아이돌(Eyedoll)’이다.

마리 킴은 이번 전시회에 세계적인 화가들의 명화와 고려불화의 주인공을 아이돌 캐릭터로 대체한 회화 25점, 조각 1점을 선보이고 있다. 호주 멜버른공대에서 멀티미디어를 공부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마리 킴은 컴퓨터 작업에 익숙하다. 컴퓨터로 가공한 이미지는 무한한 복제와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다각도로 재창조, 재생산한다. ‘아이돌’ 캐릭터의 화장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히며 변화를 시도했다.

디지털 이미지를 그대로 프린트한 작품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 전시에선 프린트한 화면에 유화 물감 등으로 직접 그려 원작의 질감을 살린 작품들을 내놨다. 명화와 불화를 오마주한 만큼 작품 제목은 원작을 따랐다.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서양 명화를 오마주한 작품은 15점이다. 나선형으로 똬리를 튼 나뭇가지들이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관능적 여인의 자리를 아이돌 소녀가 차지했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1957년작 ‘웨스턴 모텔’, 프랑스 작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1854년작 ‘오송빌르 백작부인의 초상화’, 에두아르 마네의 1873년작 ‘철도에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1876년작 ‘물뿌리개를 든 소녀’도 아이돌 덕분에 새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는 원작처럼 세트로 걸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흰 담비를 안은 여인’, 디에고 벨리스케스의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도 면모를 일신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고려불화의 변신이다.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에 소장된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모양의 커다란 광배 속에 관음보살이 들어 있어 ‘물방울 관음’으로 유명하다. 그윽한 눈길로 관조하는 기존 불화의 관음보살 자리에 속눈썹이 길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돌이 자리했다.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이 소장한 14세기의 전형적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에서는 세 명의 아이돌이 삼존불을 대신한다.

명작을 오마주했다지만 원작의 모방·복제 논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마리 킴은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오래전 죽은 예술가들의 명작을 이 시대의 기술과 상상력으로 되살린 것”이라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을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