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햇살에 땀이 비 오듯 했지만 K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쫓기듯 집에 도착한 그는 미행이라도 당하고 있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본다.
K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한참 뒤에서야 고교 시절 자신의 이런 이상한 행동에 대해 털어놨다.
미모의 K는 남학생들이 종종 뒤를 따라왔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산동네에 사는 게 너무 창피해서 조금만 낌새가 이상하면 집에 가지 않고 주변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실제 인물인 K가 1980년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수년간 거주했던 이 판자촌은 지금도 그대로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간 뒤 다시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좁은 아스팔트 길과 가파른 돌계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야 하는 곳. 서울 인왕산 북쪽 자락에 있는 일명 개미마을이라고 부르는 동네다.
지번 주소는 서대문구 홍제동 9-81.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가운데 하나다.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무렵 만들어졌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임시 거처로 천막을 치고 살았고, 이후 경제성장기에도 주로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무허가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섰다.
마을 주민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일용직에 종사하거나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독거노인도 많다.
가끔 K의 아버지처럼 사업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와서 살았다.
공중화장실도 있다.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용한다.
화장실이 없는 집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개미마을에 사는 찬실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공 찬실이(강말금 분)가 사는 동네가 바로 개미마을이다.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던 찬실이는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갑자기 죽자 실업자 신세가 되면서 산동네로 이사를 한다.
친한 후배가 금전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찬실은 "일해서 벌어야 한다"며 후배 집 가사 도우미가 된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영화에 대한 열정뿐인 찬실에게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시련이 함께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산다'고 자위하며 영화판의 '열정페이'를 견뎌왔지만, 나이 사십 넘어 일터를 잃고 보니, 그에게 남겨진 건 돈도, 직장도, 사랑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쯤 되면 충분히 비극인 듯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코믹하다.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오는 쇼팽의 '장송행진곡'(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은 왠지 장난스럽다.
찬실이의 억센 부산 사투리가 스크린을 가를 때마다 그 기묘한 어긋남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어서 그랬던가.
달동네로 이사하던 날, 개미마을 단칸방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찬실의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와∼높으니까 다 보여…" 대사만 듣는다면 최고층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일과 구별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 찬실이는 한탄한다.
인생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다.
평생의 반려였던 영화에서 손을 떼버릴까.
선택의 기로, 고뇌의 순간에 찬실에게 남자 한 명이 나타난다.
그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찬실에게만 보이는 귀신이다.
이름은 장국영(김영민 분). 소녀 시절 홍콩 영화에 열광했던 세대인 찬실에게 장국영은 노스탤지어이자, 영화의 수호신이다.
어쩌면 찬실이 자신일 수도 있다고 김초희 감독은 말한다.
장국영은 찬실에게 영화에 애정을 품게 된 초심을 돌아보고,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전 세계 모든 영화제의 수상자들은 마이크를 잡고는 하나 같이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늘 한 곳만을 비출 뿐이다.
한 곳밖에는 비출 수 없는 게 스포트라이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모든 영화인에게 바치는 헌사다.
기생충과 같은 작품이 수없이 많은 '찬실이들'의 눈물과 헌신이 빚어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찬실이들에 대한 오마주다.
◇ 봄꽃이 활짝 폈다
개미마을에 울긋불긋 봄꽃이 활짝 폈다.
가파른 계단 옆에도, 가난한 노인의 작은 텃밭에도. 어느덧 개미마을이 꽤 유명해진 모양이다.
전국의 여느 산동네처럼 벽화가 그려지고, 등산로 옆에는 아이들을 위한 꽤 큰 놀이터가 생겨났다.
개미마을에 다녀왔다는 블로그 글도 많다.
김초희 감독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개미마을 로케이션에 대해 "제작비 때문에 무조건 서울에서 촬영해야 했는데 기본 설정은 산동네였다.
그리고 그 산동네가 굉장히 이질적인 공간이길 바랬다.
왜냐면 찬실이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페이스로 살고 있으니까"라고 했다.
개미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이질적인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그런 풍경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 나와 다른 것,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개미마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른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 본 일이었다"는 대사와 함께.
이른바 '가난 포르노'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탓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마을이 관광지가 되고, 여고생 K에게는 '더없는 창피함'이 누군가에는 '더없는 볼거리와 경험'이 되는 세상은 그저 씁쓸할 뿐이다.
개미마을이 속한 동네는 원래 '문화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1950년대 말 시인, 아동문학가,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이 살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대문구에 살던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문화촌=가난한 동네'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어쩌면 진정한 문화예술은 가난의 심연 속에서만 피어나는 꽃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제목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불운한 영화 인생에 대한 지독한 역설일까.
아니면 찬실이는 정말 복이 많은 걸까.
판단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