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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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과반 의석 확보는 물론 범여권 정당 의석을 합하면 국회 선진화법 제약을 받지 않는 180석을 넘겼다.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전국 단위 선거 4연승 기록이다. ‘정권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이 더 먹혔다.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할 수 있는 거대 여당 독주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범여권이 손을 잡고 개헌까지 추진할 가능성도 커졌다.

여권은 정권 중반기에 치른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각종 정책들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강력한 국정 장악력을 갖게 된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 힘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여권발 검찰개혁에도 걸림돌이사라져 속도를 낼 전망이다. '문재인표 정책'들의 시즌2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앞장서 지휘해 온 이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정치1번지 종로에서 대승을거둠에 따라 여권 내에서 명실상부한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됐다. 반대로 패배한 미래통합당은 선장인 황교안 대표가 서울 종로에서 이낙연 위원장에게 패배한 뒤 대표직을 사퇴함에 따라 구심점을 잃게 됐다. 선거 책임 문제를 놓고 극심한 내홍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민주, 문재인표 정책들 밀어붙인다

여당 압승으로 ‘문재인표 정책’들 추진에 장애물이 걷혔다. 특히 눈여겨 봐야할 것은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국회에 입성에 대거 성공했다는 점이다. 여의도를 향한 청와대의 입김이 더 세지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들어 민주당 보다 청와대의 힘의 우위가 두드러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터다.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 진성준 전 정무비서관, 민영배 전 사회정책비서관 등 청와대 출신들은 ‘문재인표 정책’ 추진에 총대를 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친문(친문재인)계 의원들도 대거 당선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에 의레 나타난 ‘레임덕’을 막을 강력한 방어막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여권은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법안 처리를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강하게 주장해온 인사들이 다시 의원 뱃지를 달거나 새로 입성하면서 뒷심도 든든해졌다. 이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코너로 거세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면서 윤 총장의 입지도 좁아지게 됐다.
또 2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 다중대표소송과 집중투표제를 담은 상법개정안, 공무원·교원노조법 개정안, 지주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 기준 상향 등을 규정한 기업 규제 법안, 공정거래위원회 전속 고발권 폐지, 소비자집단소송제 도입,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 추진에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이미 총선 직후 이들 법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해놓은 상황이다.

국회에 제출돼 있는 종합부동산세 상향 법안이 그대로 처리될 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서울 서초 · 강남 · 송파 · 강동 · 용산 · 양천, 경기 분당 지역 민주당 출마자들이 총선 과정에서 종부세 부담 완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가구 1주택자 중 장기 실거주자는 면제, 주택연금 가입 기준 9억원 상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낙연 위원장도 정부 여당의 방침 변화를 시사해 총선 뒤 어떻게 가닥이 잡힐 지 주목된다.

민주당이 다른 범여 정당들과 손을 잡는다면 개헌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좌파적 색채가 더 강화되면서 거센 이념 논쟁이 벌어질 공산도 있다. 다만 문 대통령 임기말 개헌이 국정 블랙홀이 될 우려도 있어 여당이 섣불리 개헌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까지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면 개헌 추진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여권은 대북 대화와 북핵 협상도 적극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추가 정상회담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에서 꾸준하게 제기해 온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추진도 예상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총선 승리로 차기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고 보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선 승부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것이다. 총선 압승은 곧 문재인 정부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 수행에 대한 야당의 반대 걸림돌이 더 낮아진 만큼 책임도 더 커졌다는 얘기다.

임기말 국정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기 대선 구도는 진짜 국정심판론으로 흐를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상황,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외교 안보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며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권이 오롯이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차기 대선에서 우리가 심판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안세력 보여주지 못한 미래통합당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 · 조국 심판론’과 ‘폭주 견제론’을 내세웠지만, 민주당의 ‘국난극복’ 구호를 넘지 못했다. 당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덮어버린 게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패배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실정’에만 기댄 채 집권 대안 세력으로서 비전과 희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탄핵 책임 문제를 놓고 극심하게 분열하면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일부 통합을 이뤘지만 미완에 그쳤다. 태극기 세력도 분열을 거듭하면서 건전한 대안세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공천 과정에서도 친황(친황교안)계 살리기, 비례위성정당 주도권 잡기 싸움 등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사례들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보수의 정통가치를 지키지도 못했다. 정부 여당의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맞서 오히려 더 퍼주기 경쟁에 나섰다. 통합당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준다는 당초의 선별적 지원 원칙을 일치감치 스스로 깨버리고 ‘먹고 더블로’식으로 갔다.
통합당은 한동안 혼란스런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구심점이 없이 패배 책임을 두고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공천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친이(친이명박)계와 중도 계열 인사들이 공격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당의 주류였던 친박(친박근혜)계가 공격의 선봉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친박계가 공천 과정에서 대거 탈락함에 따라 다시 당의 주류로 부상할 힘이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적지 않다.
이에따라 과거 친이-친박계라는 계파에서 벗어나 제3의 신진세력들을 중심으로 당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공산도 크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중도층, 무당층 마음을 끌어오는 데 실패한 만큼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중도 색채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박형준 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선거 패인으로 “중도충에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권, 대선 유리? … 국민의 삶 나아지지 않으면 심판 받을수도

총선은 끝났지만, 대선 주자들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종로에서 승리한 이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불출마를 한 이해찬 현 대표 후임으로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 후보로 나서 실질적인 당의 간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당 기반도 다질 수 있게 됐다. 특히 총선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민주당 후보들의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했다. 유세 지원을 받은 후보들이 이 위원장의 우군이 될 수 있다.
다만 당의 대주주인 친문 세력들의 지지를 온전히 끌어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차기 유력 대선 주자 쪽에 힘이 쏠릴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친문 세력들도 이 위원장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그러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친문 주자들이 대선전에 뛰어든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권 주자들은 더욱 ‘풍성’해졌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이 위원장과 치열한 대선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주자 가뭄 겪게 될 통합당

통합당은 갑갑해졌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패배한 황 대표는 대권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정치 생명 위기를 맞게 됐다.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낙선하면서 당 내에선 이러다가 대선 주자 가뭄에 시달리는 것 아니냐는 한탄마저 나온다.
당의 공천 배제에 불복해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 전 대표와 역시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태호 전 경남 지사가 생환했다. 이들이 통합당에 복당한다면 통합당의 유력 대선 주자가 될 수 있다.
측근들이 선전한 유승민 의원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측면 지원 유세에만 집중해온 만큼 직접적인 선거 패배 책임에서 비켜날 수 있다. 중도층, 무당층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통합당 패배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중도보수를 주창해 온 유 의원이 당 대표 후보로 나설 것이란 예상도 있다. 다만 원외가 되는 것이 한계다.
홍 전 대표, 김전 경남지사, 유 의원, 5선에 오른 주호영 의원과 정진석 의원, 조경태 의원 등이 당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뚜렷해진 지역주의 색채

이번 선거를 통해 ‘동보서진(동쪽은 보수 정당, 서쪽은 진보 정당)’현상이 더 뚜렷해졌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른바 ‘낙동강 벨트’에서 선전하면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40석 가운데 10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 보다 의석 수가 훨씬 줄어들었다. 대구·경북 지역은 통합당이 싹쓸이 했다. 김부겸 민주당 후보는 수성갑 지역 재선 고지에 오르는데 실패했다. 북을 홍의락 민주당 후보도 낙선했다.
반대로 호남 지역은 민주당 후보들이 28곳중 27곳을 석권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땐 전남 순천(이정현 의원)과 전북 전주을(정운천 의원)에서 통합당 전신 정당인 새누리당에서 당선자를 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호남 지역 통합당 후보 당선자는 한 명도 없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28석 중 23석을 차지했으나 이번엔 민주당이 휩쓸다시피 했다. 국민의당에서 파생된 민생당은 전멸했다.

더 강화된 양당 구도

4년 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양 강 구도에 국민의당이 녹색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어 제3의 정당으로서 견제 세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제3 정당은 사라졌다. 당초 범 여권이 양당 구도를 깨고 소수 정당의 목소리도 의회에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선거법을 개정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 취지는 무위로 끝났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면서다. 이 때문에 준연동형 선거제를 담은 선거법이 다시 개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