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혜심 연세대 교수 '인삼의 세계사' 출간

인삼은 최고의 건강식품이며 그 가운데서도 '고려인삼'으로 불리는 한국산의 품질이 세계 최고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한때 세계 상품 교역에서 인삼이 꽤 큰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서구에서 인삼에 관한 의학적, 역사적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또 미국에서도 인삼이 재배·채취됐고 건국 초기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다는 것은 미국 현지 역사가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서양사를 전공하는 설혜심 연세대 교수가 쓴 '인삼의 세계사'(휴머니스트)는 17세기 이후 의학 논고부터 약전(藥典), 동인도회사 보고서, 경제학 논고, 식물학서, 지리지, 여행기, 박물지, 신문 기사, 서신, 사전, 소설, 시,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범세계적 차원에서 인삼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한다.

유럽의 문헌 가운데는 1643년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20년간 체류한 알바루 세메두가 쓴 '대중국지'에 처음으로 인삼에 관한 언급이 나오며 이후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과 인삼에 대한 정보가 유럽에 확산한다.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삼을 '탁월한 강심제이자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으로 소개했다.

유럽에서도 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요가 생기게 되자 여러 형태로 수입이 이뤄지게 된다.

유럽으로 처음 들어간 인삼은 한국산이었다.

17세기 중·후반까지는 일본을 거쳐 고려인삼이 유럽에 들어갔고 중국이 개항한 17세기 후반부터는 중국에서도 인삼이 유럽의 선박에 실리게 된다.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던 인삼 교역의 방향은 18세기 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인삼이 발견되면서 큰 전환을 맞는다.

중국으로부터 차 수입이 크게 늘었지만, 막상 중국에 팔 것이 없던 유럽 국가들은 북미삼이 수지맞는 상품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곧 알아차린다.

캐나다산 북미삼은 몬트리올과 퀘벡에서 선적해 유럽의 대서양 연안 항구들로 보내진 뒤 그곳에서 다시 동인도회사가 중국 광둥으로 가져가는 장거리 우회로를 거쳐야 했다.

동인도회사의 해상로 독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번거로운 항로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중엽 캐나다의 인삼 무역은 최고 3천% 이익을 낸 적도 있을 정도로 인삼은 수익성 좋은 상품이었다.

1776년 독립한 미국이 뛰어들면서 이러한 인삼의 국제무역 체계는 또 한 번 변화를 맞게 된다.

별다른 수출품이 없던 미국은 인삼이 손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품목이었다.

1784년 미국은 자국 상선을 이용한 첫 해외무역을 성사시키는데 이 배의 전체 화물 27만달러어치 가운데 인삼이 24만 달러어치에 달했다.

미국은 1786년 1천800피쿨(1피쿨은 약 64㎏)의 인삼을 중국에 팔았고 그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국 선박으로 운송했다.

1820년 발행된 한 잡지는 "영국은 중국에 갖다 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 미국은 인삼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처럼 인삼이 국제 무역체계에 편입돼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는 가운데서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유럽 의학계에서는 인삼의 효능을 평가절하하고 약품의 원료, 제조법, 순도, 성질 따위를 기재해 약제의 처방 기준을 정한 '약전'에서 인삼을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커피의 카페인이나 아편의 모르핀과는 달리 인삼의 경우 유효성분을 추출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문화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베르타 비빈스는 서양이 인삼의 생산과 수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인삼을 '동양의 전유물'로 타자화하게 된 배경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인삼 가공 기술에 대한 열등감과 문화적 구별 짓기에 있음을 지적한다.

인삼에는 동양성, 전제성, 사치, 방탕, 비합리성과 불가해성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결국 이 때문에 인삼은 한때 엄청난 수익을 내는 상품이었고 세계 교역도 활발했지만, 서양의 내수로 이어지지 못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만 소비되는 상품으로 남고 말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인삼에서 '진세노사이드'라는 유효성분이 분명하게 규명된 오늘날 서양의 많은 나라가 인삼을 재배하고 수출하지만, 인삼은 여전히 열등하고 비합리적인 동양성에 갇혀 있다.

저자는 "과학이라는 제반 영역에도 문화적인 구별 짓기가 작동하며 그런 구별 짓기의 심성은 이른바 '객관적인 실험 결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는 점을 '인삼의 세계사'는 말해 준다"고 썼다.

464쪽. 2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