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고독한 미식가' 집필 처음에는 거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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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구치 지로 마지막 대담 '그림 그리는 사람' 번역 출간
"'고독한 미식가'의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그리기에는 이상적인 만화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결국 편집자와 출판사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고인이 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1947~2017)가 세상을 떠나기 전 프랑스 인문학자 브누아 페터스와 나눈 대담에서 털어놓은 '고독한 미식가'의 뒷얘기다.
2011년 8월 22일부터 엿새에 걸쳐 이뤄진 이 대담은 이듬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그의 작고 3주기에 맞춰 이번에 나온 한국어판은 풍부한 이미지 자료, 대담에 등장하는 일본과 세계 각국 만화가 80여명에 대한 주석, 페터스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쓴 별도의 서문 등이 추가됐다.
시골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다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도쿄로 올라가 만화가의 조수로 경력을 시작한 다니구치가 자신의 인생과 만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돗토리현의 동해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공부보다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선배 만화가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일을 익히는 오랜 수련 과정을 거친 뒤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현대 일본 만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94년 처음 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시나리오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와 원래부터 함께 일하던 다른 만화가에게 더 잘 맞을 것으로 보고 그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편집자와 출판사 측은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글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는 만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과 그림의 불일치'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집필을 승낙했고 '고독한 미식가'는 두 권의 단행본으로 일본에서 발간된 후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대만, 중국, 독일, 포르투갈, 덴마크 등에서도 번역 출간돼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겼다.
또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방영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독한 미식가'에 앞서 나온 '산책'은 1995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돼 큰 호응을 얻었다.
대담에서 페터스는 "일본 만화에 대해서는 흔히 폭력적인 액션 장르나 단순한 서사의 코믹 장르가 전부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산책'을 통해 매우 섬세한 그림체로 독자를 성찰로 이끄는 작품을 발견하게 돼 프랑스의 만화 애호가들은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산책'은 대사를 거의 생략하고 그림만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으며 '고독한 미식가'도 이런 시도의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다니구치가 '고독한 미식가' 부류의 작품만 다뤘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탐정만화, 성인만화, 동물만화, 권투만화, 음식만화, 등산만화, 괴물만화 등 온갖 장르의 대중적인 작품은 물론이고 역사만화, 문학만화, 철학문화와 같은 성찰적인 작품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는 일찍이 유럽 만화에 관심을 갖고 유럽 만화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의 만화에 사실주의 경향이 더 짙어지고 배경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도 유럽 만화의 영향이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도 다니구치의 만화들이 다수 번역 출간되고 2003년과 2005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열네 살'과 '신들의 봉우리'가 각각 최우수 시나리오상과 최우수 작화상을 받는 등 그는 세계적인 만화가의 명성을 얻게 됐다.
다니구치는 책에서 페터스의 질문에 따라 자기 작품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리하게 분석하며 작품을 기획할 때 핵심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서사 구조를 어떻게 구성하고 시나리오를 화면에 옮기는 과정에 어떤 원칙을 세우는지, 어떻게 인물의 감정 표현을 가시화하는지, 배경에 지극히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설명한다.
또 말풍선과 지문은 어떤 원칙에 따라 배치하고 대사가 전혀 없는 만화에서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마치 친절한 선배 만화가가 후배에게 자기만의 비밀을 공개하듯 깨알 같은 정보들을 상세히 들려준다.
좀처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고백이자 후학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페터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니구치의 이야기에서 풍기는 시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예를 들어 오즈 야스지로, 구로자와 아키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과장하자면 세월이 흐르면서 다니구치는 장인에서 창작자가 됐다"고 썼다.
이숲. 김희경 옮김. 200쪽. 2만원. /연합뉴스
"'고독한 미식가'의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그리기에는 이상적인 만화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결국 편집자와 출판사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고인이 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1947~2017)가 세상을 떠나기 전 프랑스 인문학자 브누아 페터스와 나눈 대담에서 털어놓은 '고독한 미식가'의 뒷얘기다.
2011년 8월 22일부터 엿새에 걸쳐 이뤄진 이 대담은 이듬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그의 작고 3주기에 맞춰 이번에 나온 한국어판은 풍부한 이미지 자료, 대담에 등장하는 일본과 세계 각국 만화가 80여명에 대한 주석, 페터스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쓴 별도의 서문 등이 추가됐다.
시골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다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도쿄로 올라가 만화가의 조수로 경력을 시작한 다니구치가 자신의 인생과 만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돗토리현의 동해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공부보다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선배 만화가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일을 익히는 오랜 수련 과정을 거친 뒤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현대 일본 만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94년 처음 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시나리오 작가 쿠스미 마사유키와 원래부터 함께 일하던 다른 만화가에게 더 잘 맞을 것으로 보고 그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편집자와 출판사 측은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글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는 만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과 그림의 불일치'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집필을 승낙했고 '고독한 미식가'는 두 권의 단행본으로 일본에서 발간된 후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대만, 중국, 독일, 포르투갈, 덴마크 등에서도 번역 출간돼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겼다.
또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방영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독한 미식가'에 앞서 나온 '산책'은 1995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돼 큰 호응을 얻었다.
대담에서 페터스는 "일본 만화에 대해서는 흔히 폭력적인 액션 장르나 단순한 서사의 코믹 장르가 전부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산책'을 통해 매우 섬세한 그림체로 독자를 성찰로 이끄는 작품을 발견하게 돼 프랑스의 만화 애호가들은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산책'은 대사를 거의 생략하고 그림만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으며 '고독한 미식가'도 이런 시도의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다니구치가 '고독한 미식가' 부류의 작품만 다뤘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탐정만화, 성인만화, 동물만화, 권투만화, 음식만화, 등산만화, 괴물만화 등 온갖 장르의 대중적인 작품은 물론이고 역사만화, 문학만화, 철학문화와 같은 성찰적인 작품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는 일찍이 유럽 만화에 관심을 갖고 유럽 만화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의 만화에 사실주의 경향이 더 짙어지고 배경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도 유럽 만화의 영향이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도 다니구치의 만화들이 다수 번역 출간되고 2003년과 2005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열네 살'과 '신들의 봉우리'가 각각 최우수 시나리오상과 최우수 작화상을 받는 등 그는 세계적인 만화가의 명성을 얻게 됐다.
다니구치는 책에서 페터스의 질문에 따라 자기 작품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리하게 분석하며 작품을 기획할 때 핵심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서사 구조를 어떻게 구성하고 시나리오를 화면에 옮기는 과정에 어떤 원칙을 세우는지, 어떻게 인물의 감정 표현을 가시화하는지, 배경에 지극히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설명한다.
또 말풍선과 지문은 어떤 원칙에 따라 배치하고 대사가 전혀 없는 만화에서 감정과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마치 친절한 선배 만화가가 후배에게 자기만의 비밀을 공개하듯 깨알 같은 정보들을 상세히 들려준다.
좀처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던 그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고백이자 후학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페터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니구치의 이야기에서 풍기는 시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예를 들어 오즈 야스지로, 구로자와 아키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과장하자면 세월이 흐르면서 다니구치는 장인에서 창작자가 됐다"고 썼다.
이숲. 김희경 옮김. 200쪽. 2만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