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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하는 바둑계의 '전설' 조치훈(64) 9단의 마음속에는 늘 한국이 있다.
프로 바둑기사 조치훈은 29일 서울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2019 NH농협은행 시니어바둑리그 폐막식에서 최우수기사 상(MVP)을 받았다.
3년 연속으로 소속 팀인 부산 KH에너지의 우승을 이끌었고, 3년 연속 MVP로 선정됐다.
2017년 처음 시니어리그에 참가했을 때, 조치훈은 "한국 기전에 참가하는 꿈을 이뤘다"고 감격했다.
계속 그 꿈을 이어나가다 보니 시니어리그의 확고한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조치훈은 "한국 기사들이 나를 받아줄지 걱정했었는데, 팀원들이 나를 받아주는 느낌을 받으면서 안심했다.
팀이 3년 동안 우승했던 것은 팀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었다.
한국기원과 한국 기사들이 나를 받아준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조치훈은 6살이던 1962년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 11살에 일본기원에 입단한 이후 계속 일본에서 활동해왔다.
조치훈은 일본 바둑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1980년 일본 최고 타이틀인 명인(名人)을 획득했고, 1990년대 중후반에 일본 1∼3위 기전인 기성(棋聖), 명인, 본인방(本因坊)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에 4차례 올랐다.
조치훈은 "바둑을 둘 때는 항상 일본에 있었고 한국말도 잘 못 해서 한국 사람들이 나를 받아줄까 걱정했다.
처음 시니어리그 대국을 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긴장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이어 "마누라가 죽고 나서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세졌다.
마누라가 떠난 것도 한국 리그에 참가하게 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조치훈은 일본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1977년 6살 연상인 교코 여사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교코 여사는 췌장암 투병 끝에 2015년 별세했다.
조치훈은 "마지막에 죽을 때 한국에서 죽고 싶은 생각은 한다"면서도 한국에 돌아와서 살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조치훈은 "일본에 있으니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한국에 완전히 살면 한국의 나쁜 점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살면 후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일본과 한국을 똑같이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일본이 나에게 준 것이다.
이렇게 시니어리그에 나오면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국과 일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털어놨다.
조치훈은 바둑 공부를 할 때 늘 한국 드라마와 트로트를 틀어 놓는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골프나 산책을 하고, 술 조금 마시면서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2∼4시부터 인터넷으로 바둑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국 드라마가 나오니 틀어놓고 한국 공부도 같이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말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트로트도 좋아해서 들으면서 공부한다.
'님은 먼 곳에'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며 "하루 8시간 공부하는데, 머리에 바둑 공부는 조금만 들어간다.
이 나이에 100% 고생하면서 공부하다 죽는 것은 좀 아까운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인터넷을 활용해 공부하지만, 박정환, 신진서 등 한국, 중국, 일본 기사들의 기보를 보거나 자신의 바둑을 둬 보는 정도이지,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AI)'으로 공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조치훈은 "지금 시대에는 바둑 공부를 하기가 싫다.
너무 머리가 아프다.
내가 어릴 때 일본에 가서 공부했던 바둑과 180도 다르다.
인공지능으로 공부하기는 싫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바둑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며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 9단의 이야기가 나오자 조치훈은 "이세돌은 다른 능력이 있어서 은퇴한 게 아닐까"라며 "나도 다른 능력이 있으면 은퇴하고 싶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평소 유쾌하고 재밌는 입담을 자랑하는 그는 "진짜로 코미디를 하려면 웃기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둑만 둔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성기 시절보다 기력은 약해졌어도 더 행복한 바둑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치훈은 "바둑이 약해지면서 바둑을 더 사랑하게 됐다.
지금은 두 번에 한 번 이기면 기쁘다.
옛날에는 세 번 이기고 한 번 지면 슬펐다.
옛날에는 나를 때리면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술 마시면서 공부해도 좋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풍도 좀 달라졌다.
예전에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적당히 두면 된다'는 생각이다.
아무 데다 두면 된다"며 웃었다.
그만큼 과거 치열한 바둑을 뒀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조치훈은 "예전에 일본에서 목숨 걸고 둔다고 말했다.
그때는 바둑에서 지면 나에게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둑에서 이겨야 내가 일본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조치훈이 6살에 유학길에 오르면서 남긴 '명언'의 뒷이야기도 뒤늦게 공개했다.
그는 '일본에서 명인에 오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했고, 실제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약속을 지켰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조치훈은 "그 말은 가짜죠"라면서 크게 웃었다.
그는 "비행기 타고 간다고 해서 '신난다' 하면서 갔다.
하지만 그때는 그 비행기를 타면 영원히 한국에 못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