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 30년 운영 이충열 대표, 류가헌서 아카이브사진전
1956년 문을 연 학림다방은 6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대학로를 지킨 역사적인 공간이다.

서울대가 1975년 관악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대생들의 아지트였고, 그 이후에도 지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한복판에 있었고,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는 '레트로' 감성 충만한 곳으로 인기다.

고색창연한 분위기로 젊은이들의 'SNS 핫플레이스'가 됐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촬영한 후에는 한류 팬들도 찾아온다.

이들에게는 남자 주인공 김수현이 앉았던 창가 자리가 최고 명당이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학림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변함없다.

나무 계단과 테이블, 낡은 천 소파, 빛바랜 LP와 사진까지 옛 모습을 간직했다.

학림다방 60여년 중 절반 이상을 지킨 이충열 대표(65)는 대학로와 학림 역사의 산증인이자 관찰자다.

1987년 학림다방을 인수해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커피를 내리고 단골들을 맞았다.

틈나는 대로 카메라를 들어 그곳 풍경을 담았다.

가난한 문화예술인들도 그의 주요 촬영 대상이었다.

대학로 배우와 가수 인물사진부터 보도자료용 공연 사진까지 단골들에게 무보수로 찍어줬다.

지금은 없어진 3층 암실에서 직접 인화했다.

한국 공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 1994년 초연 당시 사진도 그가 찍었다.

다방에 드나들던 단골들과 대학로 거리풍경도 사진에 담았다.

작품용 사진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사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찍은 사진들이 소중한 자료가 됐다.

종로구 청운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28일 개막하는 아카이브 사진전 '학림다방, 30년 - 젊은 날의 초상'은 그의 첫 사진전이다.

소리 없이 대학로의 모습을 기록한 이 대표가 지난 30년간 촬영한 사진을 처음으로 내놓는 자리다.

전시는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젊은 날의 초상'에서는 가수 김광석부터 배우 송강호, 황정민, 설경구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초년시절, 가수이자 연출가 김민기 등 대학로 문화예술계를 이끌어온 이들의 모습을 본다.

'창밖으로 흐른 시절들'은 학림다방에서 창밖을 통해 본 바깥 풍경이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시위 현장부터 뜨거웠던 2000년대 월드컵 거리응원까지 현대사의 변화가 보인다.

'학림다방'은 시인 김지하와 윤구병, 홍세화부터 이름 모를 시민들까지 학림다방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시를 앞두고 학림다방에서 만난 이충열 대표는 "거의 매일 오던 단골들을 주로 찍었는데 그동안 찾아온 손님들을 모두 촬영했다면 훌륭한 근대인물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손님들이 김수현 자리라고 찾는 창가 좌석은 백기완 선생님이 매일 앉던 자리"라며 "요즘은 오히려 단골손님들이 와도 자리가 없어 민망하고 죄송하다"고 전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진을 좋아한 그는 1974년 개설된 YMCA 사진학원 1기생으로 등록했다.

운 좋게 군대에서는 사진병으로 근무했다.

30년 전부터 찍은 흑백 사진을 정리하니 500롤, 약 1만5천장이나 됐다.

이번에 2천장을 추리고, 그중에서 약 80장을 전시한다.

이 대표는 "공연 사진을 찍고 필름이 남으면 거리도 찍고 손님들도 찍었다"라며 "정리하면서 다시 보니 예전에 인화하지 않았던 것 중에 오히려 값진 사진이 많았고 감회가 새로웠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자리에서 세상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기록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라며 "젊은 시절에는 멋있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기록 자체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잘 찍은 사진도 아니고 유명 작가도 아니지만 30년이 지나고 보니 세월이 귀한 사진을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주변 사람과 풍경을 담아가겠다"고 밝혔다.

사진전은 2월 9일까지 열린다.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출간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