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크립스 연구소,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논문
뇌에 들어오는 정보 가운데 장기 기억으로 저장할 것을 골라내는 일종의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유전자 그룹이 동물 실험에서 발견됐다.

기억의 장기 보관에는 상위 조절(up-regulate) 유전자 그룹과 하위 조절(down-regulate) 유전자 그룹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하위 조절 유전자 그룹(Ras)이나 후속 반응을 일으키는 연관 분자들(Raf)이 침묵하면 저장됐던 장기 기억이 모두 제거된다고 한다.

이 하위 조절 유전자 그룹은 장기 및 중기 기억 사이에서 '분자 스위치(molecular switch)'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의 로널드 데이비스 교수팀은 관련 논문을 13일(현지시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 연구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민간 생의학연구소로 꼽힌다.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에 중점적으로 연구한 기억 유형은 '단백질 합성 의존 장기 기억', 약칭 PSD-LTM이다.

실험 모델은 동물 실험에 자주 쓰이는 노랑초파리(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였다.

기억을 저장하는 동물의 유전적 하부 구조는 종(種) 전반에 걸쳐 대부분 잘 보존돼 있다고 한다.

초파리 실험에서 나온 이번 연구 결과가 관심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은 분자 수준에서 초파리의 기억 강화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일부 뇌 영역에서 몇몇 유전자의 발현도를 낮추고 결과를 관찰했다.

여기에는 RNA 간섭 현상을 이용했다.

이는 RNA가 상보적 서열의 mRNA와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Ras 유전자와 Raf 분자의 발현을 억제하자, 초파리 뇌의 기억 저장 영역에서 중기(intermediate-term) 기억이 두드러지게 강화되고, 반대로 나쁜 경험에 대한 PSD-장기 기억은 완전히 삭제됐다.

Ras 유전자에 작용하는 Ras85D 효소는 원래 동물의 기관 발달과 암 발생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성숙한 동물의 뇌에서는 Ras 유전자가 기억을 장기 보관할지, 중기 보관할지 결정하는 데 관여한다는 게 새롭게 밝혀졌다.

장기 기억과 중기 기억을 구분하는 신호 전달에는 도파민이 관여할 것으로 추정된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데이비스 교수 랩(실험실)의 나다니엘 노예스 박사는 "어떤 기억이 장기 보관할 만큼 중요하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는 게 아마 도파민일 것"이라면서 "Ras와 Raf는 도파민 신호를 받아 중기 기억을 차단하고 PSD 장기 기억을 촉진할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중기 기억 시스템이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노예스 박사는 "중기 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다수가, 포유류의 기억과 뇌 가소성(plasticity)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