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허물다…"해방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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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9집 '너와 나', 반려견 소리 채집해 음악으로 재창조
상쾌한 '사각사각'으로 시작해 '졸졸졸' 물소리 같기도, 음식을 '촙촙촙' 씹는 것 같기도 한 소리들이 1분 22초간 무수히 겹쳐지며 묘한 하모니를 만든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4)의 정규앨범 '너와 나'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듣는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이게 음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정체는 루시드폴의 십년지기 반려견 보현이 콜라비를 씹어먹는 소리를 변주한 것. 최근 강남구 안테나 사무실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보현의 아삭아삭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녹음해 봤는데 굉장히 음악적이었다"며 "여러 명의 보현이 동시에 콜라비를 씹으며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곡에는 가요 사상 최초로 반려견이 '연주'하고 루시드폴이 편곡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반려견을 대등한 음악적 파트너로 대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루시드폴은 16일 발매하는 정규 9집에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되묻고 경계를 허문다.
소리와 음악, 음악 주체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동물, 자연과 인공….
루시드폴은 "왜 인간이 규정하는 음정만 있어야 하냐"며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리듬과 음정, 화성이 있다는 도발적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리에 대한 체험, 각성 같은 걸 하게 됐어요.
'이건 좋은 소리고 나쁜 소리, 이건 음악이고 아니고' 등 누가 내 머릿속에 주입했는지 알 수도 없는 분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면 그런 소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되는 거죠. 훨씬 해방된 느낌이에요.
"
방법론은 공학박사 출신답게 정교하다.
보현이 내는 소리를 채집한 뒤 잘게 자르고 변형, 재조합해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소리의 작은 단위에서 출발해 배열·가공·조합을 통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그래뉼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다.
새로운 작법을 탐색한 계기는 지난해 손가락 부상으로 꽤 오랜 시간 기타를 잡지 못하면서였다.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기타 음악을 더 안 들었어요.
외면하고 싶고. 그러면서 평소에는 듣지 않았던 음악들이 오히려 귀에 들어왔어요.
"
미국 앰비언트 뮤지션 테일러 듀프리 등에 영감을 받은 그는 연주 대신 기계를 통한 소리 창조를 탐구했고, 때마침 보현 사진집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새 앨범 구상으로 발전했다.
루시드폴은 "보현과 영원히 같이 살 수는 없을 테니 세상에 (작업물을) 박제로 남겨두고 싶었다"며 반려동물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이들도 "공감하고 위로받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보현과 보현 주변 소리는 13개 트랙 곳곳에 들어가 있다.
'뚜벅뚜벅 탐험대'에선 보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밥그릇을 딸각대는 소리가 타악기가 됐다.
스웨덴 뮤지션 루드빅 심브렐리우스가 피처링한 첫 트랙 '산책 갈까?'는 보현과 루시드폴이 산책하는 제주 곶자왈 새소리에서 시작해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심브렐리우스가 사는 스웨덴 호수, 바닷가 소리 등이 어우러진다.
소리의 파노라마만으로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근두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등 보현의 마음을 상상하며 만든 노래들도 있다.
안테나 동료 가수 CHAI(이수정), 정승환 등이 보현 마음의 '해석자'로 나서 보현의 시각에서 노래했다.
타자와 눈을 맞추며 만들어낸 루시드폴 음악은 결국 '공존'에 대한 울림을 남긴다.
그는 앨범 제목을 '나와 너'가 아닌 '너와 나'라고 굳이 짓고 싶었다며 "내가 중심이고 보현이 액세서리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든 가로수든 우리는 생명이라는 존재들과 결국 다 같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마치 인간들이 만든 세계에 불법적으로 들어오거나, 필요에 의해 공존한다는 시선에 반대해요.
같이 잘 사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면 좋겠어요.
" 제주도에 정착해 6년째 귤 농사를 짓는 그는 '듣기 싫은 소리'를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음악 작업을 하는 과수원 오두막 주변에 하나둘 타운하우스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굉음 속에 살고 있다고.
그는 "보현의 소리를 채집해서 음악에 심었듯이, 몸서리치게 싫은 쇳소리들을 녹음해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며 "치유를 받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4)의 정규앨범 '너와 나'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듣는 순간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이게 음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정체는 루시드폴의 십년지기 반려견 보현이 콜라비를 씹어먹는 소리를 변주한 것. 최근 강남구 안테나 사무실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보현의 아삭아삭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녹음해 봤는데 굉장히 음악적이었다"며 "여러 명의 보현이 동시에 콜라비를 씹으며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곡에는 가요 사상 최초로 반려견이 '연주'하고 루시드폴이 편곡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반려견을 대등한 음악적 파트너로 대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루시드폴은 16일 발매하는 정규 9집에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되묻고 경계를 허문다.
소리와 음악, 음악 주체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동물, 자연과 인공….
루시드폴은 "왜 인간이 규정하는 음정만 있어야 하냐"며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리듬과 음정, 화성이 있다는 도발적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리에 대한 체험, 각성 같은 걸 하게 됐어요.
'이건 좋은 소리고 나쁜 소리, 이건 음악이고 아니고' 등 누가 내 머릿속에 주입했는지 알 수도 없는 분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면 그런 소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되는 거죠. 훨씬 해방된 느낌이에요.
"
방법론은 공학박사 출신답게 정교하다.
보현이 내는 소리를 채집한 뒤 잘게 자르고 변형, 재조합해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소리의 작은 단위에서 출발해 배열·가공·조합을 통해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그래뉼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다.
새로운 작법을 탐색한 계기는 지난해 손가락 부상으로 꽤 오랜 시간 기타를 잡지 못하면서였다.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기타 음악을 더 안 들었어요.
외면하고 싶고. 그러면서 평소에는 듣지 않았던 음악들이 오히려 귀에 들어왔어요.
"
미국 앰비언트 뮤지션 테일러 듀프리 등에 영감을 받은 그는 연주 대신 기계를 통한 소리 창조를 탐구했고, 때마침 보현 사진집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새 앨범 구상으로 발전했다.
루시드폴은 "보현과 영원히 같이 살 수는 없을 테니 세상에 (작업물을) 박제로 남겨두고 싶었다"며 반려동물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이들도 "공감하고 위로받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보현과 보현 주변 소리는 13개 트랙 곳곳에 들어가 있다.
'뚜벅뚜벅 탐험대'에선 보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밥그릇을 딸각대는 소리가 타악기가 됐다.
스웨덴 뮤지션 루드빅 심브렐리우스가 피처링한 첫 트랙 '산책 갈까?'는 보현과 루시드폴이 산책하는 제주 곶자왈 새소리에서 시작해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심브렐리우스가 사는 스웨덴 호수, 바닷가 소리 등이 어우러진다.
소리의 파노라마만으로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근두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 등 보현의 마음을 상상하며 만든 노래들도 있다.
안테나 동료 가수 CHAI(이수정), 정승환 등이 보현 마음의 '해석자'로 나서 보현의 시각에서 노래했다.
타자와 눈을 맞추며 만들어낸 루시드폴 음악은 결국 '공존'에 대한 울림을 남긴다.
그는 앨범 제목을 '나와 너'가 아닌 '너와 나'라고 굳이 짓고 싶었다며 "내가 중심이고 보현이 액세서리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든 가로수든 우리는 생명이라는 존재들과 결국 다 같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마치 인간들이 만든 세계에 불법적으로 들어오거나, 필요에 의해 공존한다는 시선에 반대해요.
같이 잘 사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면 좋겠어요.
" 제주도에 정착해 6년째 귤 농사를 짓는 그는 '듣기 싫은 소리'를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음악 작업을 하는 과수원 오두막 주변에 하나둘 타운하우스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굉음 속에 살고 있다고.
그는 "보현의 소리를 채집해서 음악에 심었듯이, 몸서리치게 싫은 쇳소리들을 녹음해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며 "치유를 받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