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듣다 울던 '울보', 도쿄필하모닉 수석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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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지원했죠"
2017년부터 클라리넷 종신 수석…13일 예술의전당서 리사이틀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34)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두툼하게 올라와 있었다.
상처냐고 물었더니 "굳은살"이라고 했다.
'얼마나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저렇게 커다란 굳은살이 손가락에 박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성호는 이를 짐작한 듯 "사람에 따라 다른데 나는 많이 올라온 편"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연합뉴스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다.
조성호가 오랜 시간 절차탁마한 클라리넷 솜씨를 보여준다.
오는 1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클라리넷 리사이틀 '아리아'를 통해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토스카' '리골레토' 등 유명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를 클라리넷으로 편곡·변주한 곡들을 들려준다.
"한국에서 연주를 계속했다면 이런 레퍼토리를 꾸밀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선 오페라 연주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속한 도쿄필은 오페라를 정말 많이 연주했어요.
그렇게 많이 연주하면서 저도 오페라에 빠져들게 됐죠."
이번 단독 리사이틀은 그가 3년간 빠진 오페라에 헌정하는 일종의 '오마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페라 아리아로만 꾸몄다.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루이지 바시, 카를로 델라 자코마가 베르디와 푸치니, 마스카니 작품을 클라리넷 스타일로 변주한 곡들이다.
클라리넷을 이용한 오페라 아리아 연주로 리사이틀을 채우기는 국내에서 조성호가 처음이다.
"사실은 힘들어요.
변주곡이다 보니 테크닉에 다양한 요소가 많아요.
게다가 그런 곡을 다섯 곡이나 연주해야 하니 쉽지 않죠. 체력이 받쳐주는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레퍼토리를 꾸몄습니다.
" 조성호는 지난 2017년부터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수석을 맡고 있다.
서울시향에서 클라리넷 수석으로 수습 기간을 거치던 중 도쿄필에서 모집 공고가 떴다.
"해외오케스트라에서 일해 보고픈 열망"이 컸던 그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지원했고, 3차에 걸친 오디션을 거쳐 결국 종신 수석 자리에 올랐다.
한국인이 도쿄필하모닉 클라리넷 파트에서 수석을 차지하기는 그가 처음이었다.
"도쿄필은 순혈이 강한 오케스트라예요.
자국민만으로 거의 다 이뤄진 오케스트라죠. 용병을 쓰지 않아도 굉장히 잘해요.
사실 오디션을 봤지만 기대는 크게 안 했어요.
한일관계도 당시 경색국면이었는데, 일본인이 아님에도 뽑히게 됐죠. 지금도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어요.
"(웃음)
한일 관계가 격랑을 타면서 오케스트라 생활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쿄필 단원들은 프로였다.
그의 실력을 인정했고, 인정한 만큼 대우해줬다.
"도쿄필은 연간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해요.
무척 피곤한 일정이고, 연주가 많아 체력적으로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수석으로서의 부담감이 있지만, 그 외에 단원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모두 잘 대해주세요.
" 조성호는 어린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수석 입학·졸업했으며 고교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한예종에서 오광호를 사사한 후 독일로 건너가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대학에 입학했다.
5년간 독일 유학 기간 중 베를린필 수석 벤젤 푹스에게 클라리넷을 배웠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처음부터 특출나게 잘했던 건 아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음악가여서 4~5세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어린 나이여도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했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좋아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악기에 흥미를 잃어가던 중 리코더와 단소의 매력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수업 시간에서였다.
리코더와 단소를 배웠는데 "남들보다 잘했고, 정말 재미있어"했다.
어머니가 금관이나 목관악기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조성호는 클라리넷을 선택했고, 이후 20여년째 클라리넷을 분다.
그는 오랫동안 클라리넷을 불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기후가 좋지 않은 날이면 "2시간 동안 걷기"를 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건 궂건 그는 열심히 달리고, 뛴다.
그렇게 운동을 하니 폐활량도 좋은 편이다.
"건강검진을 하면 늘 폐 기능이 최고 등급으로 나와요.
"(웃음)
달리기의 또 다른 장점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기러기 아빠'인 그는 "성장기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연습이나 피곤한 연주 일정보다도 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서 그는 오늘도 열심히 연주한다.
그 꿈은 소박하지만 만만찮은 꿈이다.
"처음부터 클라리네티스트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저 음악이 좋았을 뿐이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
2017년부터 클라리넷 종신 수석…13일 예술의전당서 리사이틀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34)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두툼하게 올라와 있었다.
상처냐고 물었더니 "굳은살"이라고 했다.
'얼마나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저렇게 커다란 굳은살이 손가락에 박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성호는 이를 짐작한 듯 "사람에 따라 다른데 나는 많이 올라온 편"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연합뉴스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다.
조성호가 오랜 시간 절차탁마한 클라리넷 솜씨를 보여준다.
오는 1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클라리넷 리사이틀 '아리아'를 통해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토스카' '리골레토' 등 유명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를 클라리넷으로 편곡·변주한 곡들을 들려준다.
"한국에서 연주를 계속했다면 이런 레퍼토리를 꾸밀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선 오페라 연주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속한 도쿄필은 오페라를 정말 많이 연주했어요.
그렇게 많이 연주하면서 저도 오페라에 빠져들게 됐죠."
이번 단독 리사이틀은 그가 3년간 빠진 오페라에 헌정하는 일종의 '오마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페라 아리아로만 꾸몄다.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루이지 바시, 카를로 델라 자코마가 베르디와 푸치니, 마스카니 작품을 클라리넷 스타일로 변주한 곡들이다.
클라리넷을 이용한 오페라 아리아 연주로 리사이틀을 채우기는 국내에서 조성호가 처음이다.
"사실은 힘들어요.
변주곡이다 보니 테크닉에 다양한 요소가 많아요.
게다가 그런 곡을 다섯 곡이나 연주해야 하니 쉽지 않죠. 체력이 받쳐주는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레퍼토리를 꾸몄습니다.
" 조성호는 지난 2017년부터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수석을 맡고 있다.
서울시향에서 클라리넷 수석으로 수습 기간을 거치던 중 도쿄필에서 모집 공고가 떴다.
"해외오케스트라에서 일해 보고픈 열망"이 컸던 그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지원했고, 3차에 걸친 오디션을 거쳐 결국 종신 수석 자리에 올랐다.
한국인이 도쿄필하모닉 클라리넷 파트에서 수석을 차지하기는 그가 처음이었다.
"도쿄필은 순혈이 강한 오케스트라예요.
자국민만으로 거의 다 이뤄진 오케스트라죠. 용병을 쓰지 않아도 굉장히 잘해요.
사실 오디션을 봤지만 기대는 크게 안 했어요.
한일관계도 당시 경색국면이었는데, 일본인이 아님에도 뽑히게 됐죠. 지금도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어요.
"(웃음)
한일 관계가 격랑을 타면서 오케스트라 생활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쿄필 단원들은 프로였다.
그의 실력을 인정했고, 인정한 만큼 대우해줬다.
"도쿄필은 연간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해요.
무척 피곤한 일정이고, 연주가 많아 체력적으로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수석으로서의 부담감이 있지만, 그 외에 단원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모두 잘 대해주세요.
" 조성호는 어린 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수석 입학·졸업했으며 고교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한예종에서 오광호를 사사한 후 독일로 건너가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대학에 입학했다.
5년간 독일 유학 기간 중 베를린필 수석 벤젤 푹스에게 클라리넷을 배웠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처음부터 특출나게 잘했던 건 아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음악가여서 4~5세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어린 나이여도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했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좋아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악기에 흥미를 잃어가던 중 리코더와 단소의 매력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수업 시간에서였다.
리코더와 단소를 배웠는데 "남들보다 잘했고, 정말 재미있어"했다.
어머니가 금관이나 목관악기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조성호는 클라리넷을 선택했고, 이후 20여년째 클라리넷을 분다.
그는 오랫동안 클라리넷을 불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기후가 좋지 않은 날이면 "2시간 동안 걷기"를 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건 궂건 그는 열심히 달리고, 뛴다.
그렇게 운동을 하니 폐활량도 좋은 편이다.
"건강검진을 하면 늘 폐 기능이 최고 등급으로 나와요.
"(웃음)
달리기의 또 다른 장점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기러기 아빠'인 그는 "성장기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연습이나 피곤한 연주 일정보다도 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서 그는 오늘도 열심히 연주한다.
그 꿈은 소박하지만 만만찮은 꿈이다.
"처음부터 클라리네티스트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저 음악이 좋았을 뿐이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