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샐러리캡(총액연봉상한제) 최소소진율(70%) 미달 사태는 역설적으로 유명무실한 프로배구 샐러리캡을 현실화하자는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전력은 흔히 생각하듯 샐러리캡을 초과해 한국배구연맹(KOVO)의 제재를 받은 게 아니다.
써야 할 최소 금액을 채우지 못해 부족분 3억2천500만원을 벌금으로 내게 됐다.
한국전력은 비시즌 동안 여러 구단을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다른 구단들이 선수를 주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배구계와 팬들의 시선은 샐러리캡 규정을 준수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구단을 향한다.
배구 선수 십 수명의 몸값을 합친 액수가 과연 야구 선수 이대호 한 명의 몸값밖에 안 되느냐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이대호는 올해 연봉 25억원을 받아 프로야구 3년 연속 연봉킹에 올랐다.
이에 반해 2019-2020시즌 남자 프로배구 한 구단 전체 선수들의 샐러리캡은 26억원으로 이대호의 연봉보다 고작 1억원이 많다.
여자부 한 구단의 몸값 상한은 14억원으로 이대호 연봉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특히 한국전력은 최소 소진률의 57.5%인 14억9천500만원만 쓴 것으로 드러나 이대호 몸값보다 10억원이나 적다.
샐러리캡은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을 막고,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도모해 구단별 전력 균형을 이루고자 마련된 제도다.
각 구단이 샐러리캡을 준수하면 트레이드가 훨씬 수월하게 이뤄진다.
예산에 맞춰 팀을 운영하려면 자연스럽게 비싼 선수를 정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수의 정확한 연봉을 알 수 없고, 샐러리캡도 무용지물인 지금 상황에선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남녀 구단의 선수 정원은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최대 19명이다.
이 중 외국인 선수, 정원 외 선수, 임의탈퇴 선수, 군(軍) 입대 선수, 수련선수, 그리고 신인 선수의 연봉은 샐러리캡 계산에서 빠진다.
샐러리캡을 넘겨 많은 돈을 쓴 구단은 초과분의 500%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제재가 만만치 않기에 여러 구단이 꼼수를 빌려 구단 운영자금으로 샐러리캡 이상의 돈을 써왔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27일 현재 남자 배구 A 구단의 정원은 19명이다.
외국인 선수 1명과 신인 3명을 뺀 15명의 연봉을 합쳐 샐러리캡으로 계산한다.
종목의 규모와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남자 배구 선수 15명의 연봉이 26억원에 묶여 이대호 한 명의 몸값과 비슷하다는 건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다.
각 구단이 샐러리캡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수당과 옵션(인센티브)으로 '시세'에 맞게 선수들의 몸값을 보전해준다는 게 배구계의 정설이다.
원래 규약상 샐러리캡에 들었던 신인 선수들의 연봉도 지난 시즌 직전 이사회에서 빠졌다.
샐러리캡 규정을 위반할까 봐 각 구단이 신인 선수들과 계약을 안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숨통을 트여주려고 신인 선수 연봉을 샐러리캡 대상에서 제외했다. 배구연맹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현행 샐러리캡 제도를 현실화하자는 취지에서 개정 방안을 각 구단과 상의 중이다.
구단별 전력 보강 작업과 맞물린 관계로 당장 다음 시즌에 실행하기는 어렵지만, 3∼4년 안에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에 배구 관계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시행 시점을 두고 이견을 못 좁혀 논의는 공전 중이다.
대어급 선수들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시점에 따라 구단별 이해관계가 달라 샐러리캡 개선 논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선수들의 연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연봉 상한선을 그에 걸맞게 높인다면 팬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프로배구에 더욱 큰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그래야 배구단 프런트의 실력도 판가름 나고 프로배구의 토양도 훨씬 건강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