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죽음 통해 계급 심리 드러낸 졸라 단편선 '결혼, 죽음'

"오늘날 남자들은 사랑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여자를 알지도 못하고 여자에게 자신을 알리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한다.

이게 바로 현대 결혼의 두 가지 특수성이다.

"
'자연주의 거장' 에밀 졸라가 정의한 '현대식 결혼 제도'다.

현대라고 해봐야 19세기였지만 어쩌면 지금은 이런 현상이 더 심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 입장으로 바꿔봐도 마찬가지다.

졸라의 이런 결혼관과 인생관, 계급관을 보여주는 단편 10편을 묶은 소설집 '결혼, 죽음'(정은문고 펴냄)이 번역 출간됐다.

졸라는 단편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에서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라고 지적한다.

19세기에 이런 통찰을 보일 수 있다니 역시 문호는 일반인과 뭔가 다르다.

르포 스타일 글쓰기를 추구한 졸라는 돈과 물질, 성욕과 섹스, 인간의 이중성과 속물근성을 불편하게 건드린다.

"결혼, 사랑할 시간 없어 날 알리지도 못하고 하는 행위"
결혼뿐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분기점인 사랑과 죽음을 함께 파헤친다.

특히 이런 인간 중대사가 계급별로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드러나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예컨대 결혼의 경우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등 계급별 양상을 보여준다.

귀족에게 결혼은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강간", "끔찍한 방식으로 종결되는" 젊은 시절일 뿐이다.

부르주아에게 결혼은 지참금이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이며, 상인에게는 "서로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돈을 토대로 잘 짜인 솔직한 동업"이다.

서민의 결혼은 "낡고 빛바랜 커튼 아래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파닥거리는 새의 날갯짓 같은"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차츰 늘어"가는 것이며, 그러던 아내가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대는 행위이며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아내의 뺨을 때렸고 아내는 잘못했다고 빌었"던 장면이 반복된다.

하지만 졸라는 서민의 결혼을 나름 따스하게 마무리한다.

"이 소란하고도 구차한 생활 속에서 어떨 땐 데울 불도 먹을 빵도 없지만, 낡고 뜯어진 커튼 아래 놓인 침대에서는 밤이면 사랑의 애무가 날갯짓이라도 하듯 파닥거렸다.

"
책에 실린 단편 10편은 프랑스 대학 입학 고사인 바칼로레아 준비생에게 권하는 추천 소설이다.

19세기 계급의 심리를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토론 주제는 '우리에게 계급이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이다.

이선주가 옮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