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너 '베를린 거리의 아이들'…책은 불타고 저자는 행방불명

전체주의 정권은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은 '적'으로 몰아 처단한다.

독일 나치가 그랬고, 소련과 중국 등이 그랬다는 건 다 아는 역사적 상식이다.

선거가 만능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전체주의 독재의 최고봉으로 비난받는 '나치'가 1932년 9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탄생한 '합법 독재'의 전형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망각한다.

나치는 독일 민중은 물론 전쟁을 통해 세계 인류 전체에 엄청난 폐해를 끼쳤다.

독일 언론인 에른스트 하프너가 유일하게 남긴 소설 '베를린 거리의 아이들'(가쎄 펴냄)은 이런 메시지를 무겁게 전한다.

특히 이런 혼란과 갈등, 야만과 살육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세대는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라고 하프너는 말한다.

아직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생계 현장으로 내몰리고 베를린 길거리에서 살아야 했던 베를린 청소년들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주인공 소년들은 노숙 청소년이며 가족과 같은 울타리를 꾸리고자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그저 살아남으려 때로는 범죄도 저지른다.

하지만 이들이 아직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미성년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피해자다.

이런 광경을 저자는 리얼리즘 기법을 잘 유지하며 과장이나 설교 없이 담담하게 그리기에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더 처참해진다.

전체주의에 맞선 언론인이 남긴 유일한 소설
주인공 소년들은 어느 날 범죄자 집단으로 커가는 패거리를 떠나고자 결심한다.

고되지만 정직한 삶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두웠던 과거의 범죄를 고발당함으로써 체포돼 다시 교화소로 압송된다.

하지만 이들은 새롭고 진실한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었고 그것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라는 각성 덕분이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불안정한 시기지만 이들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포기하지 않은 채 바른 곳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태도는 지금을 사는 우리 청소년들과 겹치는 면이 있다고 옮긴 이는 말한다.

역자 김정근은 "소설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21세기 초반을 사는 현재 청소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라며 "10%를 넘어선 한국 청년 실업률은 지속해서 암울해지고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현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간접 지표"라고 했다.

1932년 독일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하프너가 남긴 유일한 소설이지만, 전체주의를 비판했기에 1933년 5월 나치가 거행한 '책 화형식'에서 불 속에 던져졌다.

그리고 하프너는 1938년 나치 선전성 '제국문학분과위원회'에 소환된 뒤 행방불명됐다.

하프너는 이처럼 제대로 알려진 구체적 이력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언론인으로서 그의 저항정신과 진실을 향한 열망은 지금도 숭고한 가치로 살아있다.

그의 소설도 약 8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