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양피지·종이…책을 만든 '뼈와 살'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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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휴스턴 지음 / 이은진 옮김
김영사 / 596쪽 / 2만4800원
키스 휴스턴 지음 / 이은진 옮김
김영사 / 596쪽 / 2만4800원


파피루스를 밀어낸 양피지는 기록매체로서 각광받았지만 원재료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양피지는 양, 새끼염소, 송아지 등의 죽음에서 시작된 유혈 낭자한 폭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린 동물의 가죽에서 좋은 양피지를 얻을 수 있었기에 최상품은 유산 혹은 사산된 송아지와 새끼양으로 만든 양피지였다. 그런데도 종교문서를 작성할 때는 소·양·염소·사슴 등 오직 ‘깨끗한’ 동물 가죽만 사용해야 했다.
후한의 채륜이 중국의 4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종이를 처음 제작한 것은 서기 105년. 닥나무 속껍질과 닳고 해진 넝마를 찧고 물에 불려 체로 거른 다음 얇은 판으로 떠냈다. 중국의 제지술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한국, 일본, 인도차이나, 인도 등으로 곧 전파됐다. 유럽에서는 1150년에야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양피지를 써온 유럽에서는 이교도들이 선호하는 종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1141년 페테르라는 수도원장은 “하느님이 낡아서 해진 속옷뭉치나 습지에서 자란 골풀 같은 저급한 재료로 만든 책을 읽겠느냐”며 종이책을 평가절하했다.
고질적인 넝마 부족 현상은 19세기 중반 목재 펄프로 종이를 만들게 되면서 해결됐다. 특히 기계화가 진전되면서 종이를 이음매 없이 연결된 두루마리로 제작하게 됐고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 19세기 초에 비해 세기 말에는 종이 생산량이 1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가 거액의 빚을 져가면서 개별 활자를 배열할 수 있는 가동 활자를 발명한 이후 책 제작 과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작업은 더욱 간소화·자동화됐다. 19세기는 발명가와 기업가들이 효율적인 인쇄기를 만들기 위해 실험과 혁신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활자를 조판하고 해판하는 식자공의 일을 대신할 식자기 개발에 17만달러를 쏟아붓고 거덜나기도 했다. 마침내 알로이스 제네펠더가 물과 유성잉크의 반발력에 착안해 개발한 석판인쇄술(리소그래피)은 출판인쇄업에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