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균열로 엮은 초상…"권위·명성의 허무함 새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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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티스트 김동유 씨 개인전
수많은 작은 얼굴을 활용해
또 다른 큰 인물 만들어 낸
'이중 얼굴'로 인기작가 부상
수많은 작은 얼굴을 활용해
또 다른 큰 인물 만들어 낸
'이중 얼굴'로 인기작가 부상
한국 팝아트 개척자 김동유 씨(55)는 2005년 유명인의 얼굴을 작은 픽셀로 삼아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크게 그려낸 ‘이중 얼굴’ 시리즈를 발표해 국내외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의 작품 ‘마릴린 먼로’는 2007년 5월 크리스티의 홍콩 경매에서 491만홍콩달러(약 7억4800만원)에 팔려 자신의 최고가를 경신했고, 이듬해 런던 경매에서는 ‘마릴린 & 케네디’가 28만8500파운드(약 4억2000만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또 ‘다이애나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2년 5월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과 런던올림픽 기념전’에 앤디 워홀, 루시앙 프로이트, 게르하르트 리히터, 길버트 앤조지 등 세계 최정상급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김씨를 단숨에 미술계 스타로 올려놓았다.
‘이중 얼굴’로 유명한 김씨가 이번엔 서양 명화의 물감층에 생긴 균열을 모티브로 한 ‘크랙(Crack)’ 시리즈를 들고 가을 화단에 돌아왔다. 오는 1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시작하는 개인전에는 2016년 목원대 교수를 그만두고 충남 공주 작업실에서 3년간 공들여 작업한 신작 90여 점을 한꺼번에 내건다. ‘크랙’ 시리즈는 가까이에서 보면 깊고 짧은 선들의 무수한 흔적이 보이고, 뒤로 물러서면 전체 형상이 또렷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중 얼굴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김씨는 서양 미술사의 특정 명화나 작고한 유명인들의 기억과 체취를 무던히 좇아왔다. 인간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며 죽음에 저항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불변의 가치를 지녔다고 믿은 과거의 권위와 상징이 유효한가’를 시각예술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했다. 무엇보다 가치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은유적 장치가 필요했다. 오랜 시간 사람들 시선의 무게를 이겨내며 견뎌온 명화의 균열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던 게 2010년 봄이다. 이중 얼굴 시리즈 효과를 살리면서 회화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걸작들만을 골라 소재로 삼았다. 대가들과 소통하며 예술혼을 깨우는 계기도 됐다.
2016년 이후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인의 초상에 도전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 가수 앨비스 프레슬리와 존 레넌 등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화면 위에 올려 ‘날것’으로 요리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수만 개의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새겨 명암까지 버무리면서 재미와 기교를 넘나들었다. 형상은 단순하고 익숙하나 웬만한 거리를 두면 한눈에 전체와 세부를 파악할 수 있다. 작품들은 명령조나 감탄문 같은, 그래서 때론 ‘허무 개그’처럼 실소를 자아내고 통렬한 조응을 일으킨다.
작가는 “명화와 유명인의 이미지를 통해 권력과 명성의 허무함,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려고 했다”며 “불멸을 추구하는 애잔한 비애, 허물어져가는 시간의 흔적, 주검에서 나오는 세속적 영광, 진리의 소멸 등이 내 작품에 내재된 힘”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거장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편으론 죽음과 사라짐이라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어쩌면 ‘마법’ 같은 일이다.
김씨는 이처럼 오랜 기간 사람들의 지위나 권위의 유한성에 대해 냉소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익숙한 이미지를 활용해 시간의 흔적과 소멸을 덧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던 유명인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객과 눈을 맞추는 명화 역시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지요.” 크랙 작업을 통해 명화나 유명인의 가치를 되짚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 속에 잠재된 불멸의 영속성을 예술로 반추해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작가의 두툼한 손에 새겨진 노동의 가치도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매일 10시간 이상 작업한다는 김씨는 100호 크기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 데 30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노동의 강도가 극사실주의 작가 못지 않은 수준이다. 색은 계절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여름에는 주로 시원한 청색, 겨울에는 붉은 계통의 따뜻한 색으로 감성을 전달한다. 극도의 섬세함을 보이는 작업은 사진 앨범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회화의 힘’과 짜릿한 ‘손맛’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이중 얼굴’로 유명한 김씨가 이번엔 서양 명화의 물감층에 생긴 균열을 모티브로 한 ‘크랙(Crack)’ 시리즈를 들고 가을 화단에 돌아왔다. 오는 1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시작하는 개인전에는 2016년 목원대 교수를 그만두고 충남 공주 작업실에서 3년간 공들여 작업한 신작 90여 점을 한꺼번에 내건다. ‘크랙’ 시리즈는 가까이에서 보면 깊고 짧은 선들의 무수한 흔적이 보이고, 뒤로 물러서면 전체 형상이 또렷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중 얼굴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김씨는 서양 미술사의 특정 명화나 작고한 유명인들의 기억과 체취를 무던히 좇아왔다. 인간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며 죽음에 저항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불변의 가치를 지녔다고 믿은 과거의 권위와 상징이 유효한가’를 시각예술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했다. 무엇보다 가치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은유적 장치가 필요했다. 오랜 시간 사람들 시선의 무게를 이겨내며 견뎌온 명화의 균열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던 게 2010년 봄이다. 이중 얼굴 시리즈 효과를 살리면서 회화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걸작들만을 골라 소재로 삼았다. 대가들과 소통하며 예술혼을 깨우는 계기도 됐다.
2016년 이후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인의 초상에 도전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 가수 앨비스 프레슬리와 존 레넌 등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화면 위에 올려 ‘날것’으로 요리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수만 개의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새겨 명암까지 버무리면서 재미와 기교를 넘나들었다. 형상은 단순하고 익숙하나 웬만한 거리를 두면 한눈에 전체와 세부를 파악할 수 있다. 작품들은 명령조나 감탄문 같은, 그래서 때론 ‘허무 개그’처럼 실소를 자아내고 통렬한 조응을 일으킨다.
작가는 “명화와 유명인의 이미지를 통해 권력과 명성의 허무함,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려고 했다”며 “불멸을 추구하는 애잔한 비애, 허물어져가는 시간의 흔적, 주검에서 나오는 세속적 영광, 진리의 소멸 등이 내 작품에 내재된 힘”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거장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편으론 죽음과 사라짐이라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어쩌면 ‘마법’ 같은 일이다.
김씨는 이처럼 오랜 기간 사람들의 지위나 권위의 유한성에 대해 냉소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익숙한 이미지를 활용해 시간의 흔적과 소멸을 덧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던 유명인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객과 눈을 맞추는 명화 역시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지요.” 크랙 작업을 통해 명화나 유명인의 가치를 되짚어보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 속에 잠재된 불멸의 영속성을 예술로 반추해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작가의 두툼한 손에 새겨진 노동의 가치도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매일 10시간 이상 작업한다는 김씨는 100호 크기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 데 30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노동의 강도가 극사실주의 작가 못지 않은 수준이다. 색은 계절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여름에는 주로 시원한 청색, 겨울에는 붉은 계통의 따뜻한 색으로 감성을 전달한다. 극도의 섬세함을 보이는 작업은 사진 앨범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회화의 힘’과 짜릿한 ‘손맛’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