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작물을 이제는 갈아엎지 마세요.
" 수급조절 실패로 가격이 폭락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농작물 산지 폐기.
올봄에는 배추가, 여름에는 양파가 트랙터에 짓뭉개져 산산조각이 났다.
가격 변동 폭이 큰 품목일수록 더하다.
가격 상승 기대심리 확산→재배 면적 증가→가격 폭락→ 산지 폐기 증가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탓이다.
하지만 전북의 농작물 재배 농민들은 이제 가격 폭락을 걱정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농산물이 기준 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시장가격과 차액을 보전해주는 '농산물 최저가격제'가 올해부터 대부분 작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보전액은 이 차액의 90%로, 연간 드는 100억원가량을 해당 시군이 부담한다.
예컨대 무 1개의 기준가격은 1천원이지만 전국적인 가격 폭락으로 시장 가액이 600원일 때, 그 차액(400원)의 90%인 360원을 따로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전라북도 주요 농산물 가격안정 운영심의회'가 농촌진흥청의 생산비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유통비 등을 토대로 품목별 기준 가격을 정하며, 시장가격은 전국 주요 도매시장의 평균가격을 적용한다.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은 전북이 처음이다.
전북도는 2016년 농산물 최저가격제 대상 품목과 지원 범위 등을 담은 '전북도 주요 농산물 가격안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그해는 가격 변동 폭이 비교적 크고 도내 14개 시·군에서 고르게 재배되는 가을배추와 가을무 등 2개 품목만 보상했다.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인 쌀과 잡곡, 과일, 축산물은 제외했다.
3년간 제한적·시범적으로 시행되다 올해부터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양파, 마늘, 마른 고추, 생강, 가을무, 가을배추, 노지 감자, 대파 등으로 품목을 대폭 늘려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올해는 9월 30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각 시·군의 통합마케팅 전문조직을 통해 계통 출하 하는 품목당 1천㎡(300평)∼1만㎡(3천평) 규모 재배 농가가 대상이다.
한모(71·김제시) 씨는 "몇 년 전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가을배추를 갈아엎은 적이 있다"면서 "당시 배추 9천 포기를 출하한 이웃 농가는 인건비와 운송비 등 들어간 비용을 뺐더니 수익은 고사하고 오히려 수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
결국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격리조치에 동참해 산지 폐기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가 농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되고 있으며 '농업의 안전벨트' 역할을 하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최재용 전북도 농축수산식품국장은 "최저가격제 시행으로 전국적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에도 전북에서는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자식처럼 키운 무나 배추를 갈아엎는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업의 성장 없이는 농도(農道) 전북의 발전도 없는 만큼 농민들이 시장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안심하고 농사짓는 영농환경을 만들고 4천500만원대인 농가당 연 소득이 5천만원 이상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