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리브스의 분석서 '20 VS 80의 사회'

"상위 20%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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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미국 사상가 리처드 리브스는 흔히 쓰는 '중산층'이라는 개념부터 '중상류층'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중산층 개념이 '편리한 허구'에 불과해서다.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이 적절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실제로 현재의 미국사회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상위 20%와 나머지 80% 사이에서 큰 격차를 드러낸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효과적으로 마련하려면 '20 VS 80'이라는 불평등의 구조를 인지하고 논의의 초점을 상위 20%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신간 '20 VS 80의 사회'는 불평등에 실제적 책임이 있는 상위 20%가 어떻게 사회를 망치고 있는지 파고든다.

최상위 1%와 나머지 99%의 대결 구조로 보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 즉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가구 소득 기준으로 봤을 때 상위 20%는 나머지와 뚜렷하게 분리되고 있다.

이는 통장 잔고와 월급 액수 등에서 드러나는 경제적인 분리이지만 학력, 가족 구성, 건강과 수명, 심지어 시민 공동체 활동 등에서도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경제 격차는 점점 더 깊어지는 계급 격차의 가장 가시적인 한 측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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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계층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저자는 불평등 담론에서 상위 1%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며 나머지 99%가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예컨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의 미국 상위 20%의 가구 소득 총합은 4조 달러가 증가한 반면에 하위 80%의 소득 총합은 3조 달러가 약간 넘게 증가했다.

상위 20%와 하위 80%를 경계선으로 불평등이 사실상 고정화하더라는 얘기다.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 개념 중 하나가 '기회 사재기'다.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성공의 기회가 평등하기는커녕 상위 20%가 사재기하며 심각한 쏠림 현상을 보인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한 채 자녀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의해 더욱 현실이 된다.

'유리 바닥'도 한몫을 한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걸 막는 보호 수단을 이르고자 저자가 제시한 용어. 중상류층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깔아주는 이 유리 바닥은 기회 사재기와 더불어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더욱 모순적이면서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이렇듯 고학력을 갖추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기회 사재기, 유리 바닥의 이득까지 누리는 중상류층이 표면적으로는 불평등을 맹렬히 비판한다는 점이란다.

유체이탈 화법이라고나 할까.

이들 중상류층 지식인은 1%와 99%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최상위층인 슈퍼 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왔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고,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며,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들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주고,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하는 중상류층 지식인들은 언행일치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중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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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이 재벌과 상위 1%의 부자들을 앞다퉈 비판하지만 입으로 내뱉는 말과 달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자녀들에게 특권을 물려주려는 위선적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이력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전이 쉽지 않을 만큼 일반화했다.

중상류층의 자기 성찰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나의 지위는 학력과 두뇌, 노력 등 나의 능력 덕분이어서 마땅히 나의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꼽는다.

영국의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려 2016년에 미국 시민이 됐다는 저자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워싱턴 D.C 인근의 부유한 동네에 사는 나 역시 상위 20%에 속한다"고 고백하며 '우리(상위 20%)'의 반성을 촉구한다.

어린 시절에 시작돼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불평등을 실제로 줄이기 위해선 필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중상류층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런 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중상류층의 각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민음사. 김승진 옮김. 272쪽. 1만7천원.
상위 계층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