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출신 충북 유일의 생존 애국지사…"광복군 시절 가장 자랑스러워"

"아버지께서는 기력이 쇠한 와중에도 '나라 잃은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대한민국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충북 유일의 생존 애국지사인 오상근(95) 선생의 아들 오장환(68)씨는 1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근황을 설명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1924년 진천군 백곡면에서 태어난 오상근 선생은 70여 년 전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고령인 선생은 진천군 노인복지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 선생은 고혈압 등 지병이 있는 데다 14년 전 뇌출혈 수술까지 받아 건강이 온전하지 못하다.

아들 오장환씨는 "3년 전부터는 질문에 짧은 대답 정도밖에 못 하실 정도로 기력이 약해지셨다"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상근 선생은 18살 때 일본군에 잡혀가 중국 북지(北支·지금의 화베이) 가혹한 훈련을 받았다.

오 선생은 2016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고향 집과 처자식이 눈에 아른거리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다"며 당시 심정을 회고했다.

그는 조선인 4명과 함께 일본군 기지를 빠져나왔다.

광복군이 있는 충칭(重慶)으로 가려고 했지만, 도중에 중국인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르는 등 2년가량 중국을 떠돌았다.

1944년 12월 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에 도착했다.

체구가 컸던 선생은 광복군에 들어가자마자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배치됐다.

임무는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을 경호하는 일이었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지만, 조국 광복이라는 목표가 있어 힘이 솟았다고 한다.

광복군에 입대한 지 1년이 될 무렵 일본군이 전쟁에 패해 철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몇 달 뒤 선생은 부대원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았다.

오 선생은 해방이 큰 기쁨이었지만, 자주적으로 조국을 광복시키지 못했다는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오장환씨는 "아버지가 오는 15일 청주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히셨다"며 "아버지에게는 광복군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기억이었다"고 설명했다.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고향인 진천과 인근 음성에서 30년간 공직생활을 한 선생은 광복회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광복군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