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금성 높은 해외 그림 선호
서울에 입성한 해외 대형 화랑들은 외국 작품 판매를 대행하는 것은 물론 해외 작가 전시회를 통해 국내 컬렉터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뒤질세라 국내 화랑들도 외국 작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최근 실물 경제가 불안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그림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비교적 환금성이 높은 해외 그림 선호 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새로운 컬렉터들을 찾아내 시장 규모를 늘리고 거래 활기도 되살리는 등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좀체 풀리지 않던 국내 미술시장에서 국내 작가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온다.
요나스 우드 ‘일본 정원3’ 49억원에 대행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자회사 서울옥션블루는 글로벌 미술품 경매대행 서비스 사업(월드와이드옥션)에 뛰어든 지 1년 만에 낙찰 누적금액 200억원을 넘어섰다. ‘월드와이드옥션’은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 필립스 등에서 진행하는 경매의 실시간 정보는 물론 응찰, 낙찰 후 작품 운송, 설치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옥션블루는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국 보스턴 출신인 미술가 요나스 우드의 대작 ‘일본 정원 3’를 49억원(401만달러)에 낙찰받아 새 주인을 찾아줬다. 경매대행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조앙 미로의 판화(1612만원)를 비롯해 카오스의 2012년 작 ‘메이크 더 런’(Make the run·2억6411만원), 조지 콘도의 2008년 작 ‘정신적 풍경’(5억8000만원) 등도 경매 대행 목록에 올랐다.
이정봉 서울옥션블루 대표는 “해외 미술품 경매대행 서비스를 시작으로 누구나 외국 작가 그림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낙찰 누적금액이 연내 5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화랑가, 외국 작가 판촉전 치열
국내외 화랑도 투자 리스크가 작고 환금성이 높은 해외작가 작품 판촉전에 뛰어들었다. 서울에 지점을 낸 프랑스 파리의 페로탱갤러리는 다음달 7일까지 멕시코 출신 작가 가브리엘 리코의 신작들을 걸고 고객 잡기에 나선다. 미국 메이저 화랑 리먼머핀 서울점도 라이자 루(9월)와 헬렌 파시잔(11월)의 개인전을 열어 국내 컬렉터들을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국내 화랑들도 발 빠르게 외국 작가 유치전에 가세했다. 2015년 이후 큰 인기를 누렸던 단색화 이후 새로운 블루칩이 없는 상황에서 대체재로 해외 작가를 찾는 분위기가 우세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최대 화랑 갤러리 현대는 오는 28일 끈과 실을 이용해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미국 작가 프레드 샌드백의 회고전을 시작한다. 가나아트센터는 한남점에서 다음달 1일까지 이스라엘 출신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전을 연다. 서울 삼청동에 본점을 둔 학고재갤러리도 지난해 청담점을 열면서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 아티스트 톰 안홀트와 독일의 팀 아이텔이 참여한 기획전 ‘프리뷰’에 이어 안드레아스 에릭슨(스웨덴), 엘리엇 헌들리(미국), 프랑코 마추켈리의 작품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외국 작가만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초이앤라거갤러리는 오는 11월까지 독일 작가 피에르 크놉의 작품전을 열고 판촉전을 펼친다. 공근혜갤러리는 고전 회화 형식을 빌린 그림 같은 사진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의 개인전을 다음 달 5일부터 시작한다. 리안갤러리(이미크 노벨), 더페이지갤러리(미샤 칸), 박영덕화(살누스티아노)도 해외 유망 작가들로 진용을 짰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미술품 수입 규모가 7억2300만달러(약 8000억원)에 달했다”며 “올해도 경제가 불안한 만큼 미술 애호가와 아트딜러, 기업 등이 사들인 해외 미술품 규모가 3000억원대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