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이 간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을 포기하면서 바이오업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일각에선 펙사벡이 아무런 효능 없는 ‘물약’이 아니냐는 지적부터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의 상용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암젠의 ‘임리직’처럼 이미 상용화된 제품이 있는 만큼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의 한계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지적한다.
신라젠 펙사벡 글로벌 임상 실패에…확산되는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효능 논란
암세포 공격하고 면역체계 활성화

임리직은 2015년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흑색종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임리직을 시작으로 바이러스를 암 치료에 활용하는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항암바이러스는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특정 유전자를 삽입한 바이러스다. 유전자 조작이 일어난 항암바이러스는 암세포를 파괴하거나 감염시켜 몸속 면역세포의 암세포 공격을 유도한다. 암세포 혈관을 괴사시켜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역할도 한다. 바이러스는 다른 미생물보다 크기가 작아 DNA 조작이 쉽고, 세포 조직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단독 요법에서는 약효가 유효하다는 임상 데이터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기존 항암제나 면역관문억제제 등과 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임리직은 MSD의 키트루다, BMS의 옵디보 여보이 등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투여하면 2배 이상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두주자인 암젠은 임리직을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방법으로 피부암, 두경부암 등의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 MSD는 호주 바이랄리틱스를 인수해 단독 요법으로 말기 피부암 치료제로, 키트루다와의 병용 요법으로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임상시험 중이다.

미국 리플리뮨은 헤르페스바이러스에 기반을 둔 항암바이러스를 옵디보와 병용해 피부암, 대장암, 방광암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일본 다카라바이오는 항암바이러스와 여보이 병용으로 피부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신라젠 펙사벡 글로벌 임상 실패에…확산되는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효능 논란
개발 중인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175종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는 175종에 이를 정도로 개발 경쟁이 뜨겁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라젠은 옵디보와 여보이, 사노피의 리브타요,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 등 4종의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키트루다와 펙사벡의 병용 임상도 내년 1분기에 시작할 계획이다.

바이로큐어와 진메디신은 단독 요법 항암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바이로큐어는 올해 호주에서 위암, 폐암, 대장암 등을 적응증으로 한 ‘RC-402’의 임상 1상을 시작한다. 진메디신은 전이암 치료제(GM101)의 임상 1상을 마쳤고 폐암 치료제(GM103)는 내년 중, 췌장암 치료제(GM102)는 2021년 임상 1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라젠의 글로벌 임상 3상 중단으로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의 효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상용화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바이오 전문매체 피어스바이오텍은 “이번 실패는 신라젠과 파트너사인 트랜스젠을 넘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머크나 존슨앤드존슨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항암바이러스의 가능성을 보고 지난 2년 동안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있는 임상 데이터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의 잠재력이 아직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윤채옥 진메디신 대표는 “미국 일본 등에서 개발 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들이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며 “항암바이러스 치료제가 암 치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도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임상 3상 조기 종료는 펙사벡의 문제가 아니라 표적항암제와의 병용에서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고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에서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