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7일부터 웅갤러리서 회화 25점 전시…제주 기념관 기금 마련전
딸 유이화 "회화에서나 건축에서나 '손의 온기' 중시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를 가셔도 자신을 '화가이자 건축가 이타미 준입니다'라고 소개하셨어요.

건축할 때도 마음에 드는 부지를 발견하면, '너무 좋은 캔버스를 만났다'라고 말씀하셨죠."
포도호텔과 수풍석미술관, 방주교회 등으로 유명한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유동룡)은 2011년 74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그림에도 열의를 보였다.

1937년 일본 도쿄 근처에서 태어난 이타미 준은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는 도쿄예대 입학을 꿈꿨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건축을 업으로 삼았으나 스케치북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평생 백자와 민화 등을 모으고 아꼈다.

'화가' 이타미 준을 만나는 전시가 다음 달 7일 서울 종로구 홍지동 웅갤러리에서 개막한다.

같은 길을 걷는 딸 유이화가 물려받은 그림 220여점 중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작업한 25점을 추려내 선보이는 자리로, 이타미 준의 순수 회화전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유이화는 검붉은 거대한 화면으로 가득 찬 그림 하나를 가리켰다.

이타미 준의 마지막 시기 작업 중 하나로, 가까이서 보면 손으로 치열하게 빚어낸 흔적이 보인다.

"아버지는 매일 밤 약주 한잔을 하신 뒤, 재즈를 틀어놓고서는 그림을 그리셨어요.

캔버스에 손을 올려놓은 뒤 '나는 이렇게 연주해'라고 말씀하시면서요.

항상 아버지 손톱 아래에 물감 찌꺼기가 있던 기억이 나요.

"
그림을 그리면서 붓을 거의 쓰지 않았던 이타미 준은 건축물을 설계할 때도 손으로 도면을 그렸다.

"아버지는 스스로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말씀하셨어요.

디지털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손의 흔적을 알려야 하고 손의 온기로 만드는 건축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림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찬찬히 들여다봤다는 유이화는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를 그리셨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릴 적 후지산 아래 바닷가에서 자라셨어요.

그 바다를 향한 추억과 기억을 평생 품고 계셨던 거 같아요.

"
전시장을 둘러본 유이화는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검은 추상화에서 어부의 그물을 상기했고, 한지에 먹으로 그려낸 그림에서는 바다의 물결을 떠올렸다.

물성이 강조된 이타미 준 그림은 1960∼197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波)와도 연결 지어 읽힌다.

그는 특히 모노하에 영향을 준 곽인식(1919∼1988)을 평생 아버지 겸 스승으로 생각했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 지어질 이타미 준 건축기념관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 마련됐다.

작품 판매액 전액이 기념관 설립 기금에 쓰이는 만큼, 화랑에서도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