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클래식 놀이극 '베토벤의 비밀노트' 8월 개막
제작진 전원 워킹맘…"관객이 내 아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죠"
엄마 예술가들이 만든 'MSG 쏙 뺀' 베토벤에 빠져볼까
"우리 공연에는 MSG(인공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한 클래식 놀이극 '베토벤의 비밀노트' 제작진에게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어린이를 겨냥한 작품이 숱하게 쏟아지는 방학철이다.

그래도 올여름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 오르는 어린이 공연은 '베토벤의 비밀노트'가 유일하다.

지난해 초연 때 매진 신화에 힘입어 8월 재연이 결정됐다.

극 자체도 흥미롭지만 더 눈길을 끄는 점은 제작진 면모. 김민정 연출(49), 김길려 음악감독(42), 이수연 편곡자(40)는 각각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7살·5살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이들은 공연 제작과정부터 아이들 음악 교육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 "어린이는 최고의 관객…최상의 음악 주고 싶었죠"
극은 축구를 좋아하고, 바이올린 연습은 싫어하는 소녀 '민서'가 우연히 베토벤의 비밀노트를 찾으며 출발한다.

첼로,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등 악기 소개부터 '엘리제를 위하여', '운명 교향곡' 연주가 이어진다.

관객이 직접 작사가가 돼 베토벤 음악에 가사를 붙여 합창하다 보면 60분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뮤지컬계 스타 연출가 김민정은 이번에도 연출의 마법을 부린다.

유명 만화 캐릭터나 현란한 시각효과는 없다.

그래도 어린이 관객들은 60분 공연에 오롯이 집중한다.

"아이들은 가장 위대한 관객이에요.

직관적이고 어른보다 예술적으로 앞서 있죠. 그래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으레 '아이들이 이런 걸 좋아하겠지?' 넘겨짚던 요소는 걷어내고, 베토벤 음악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예산도 아끼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베토벤 오브제(인형)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거고요, 오케스트라 편성도 최고의 연주자들로 섭외했습니다.

"(김민정)
7인조 오케스트라를 직접 편성한 김길려 음악감독은 한껏 악기 욕심을 냈다.

작정하고 클래식 공연에 가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마림바, 호른, 피콜로를 모두 무대로 불러냈다.

신기한 악기들이 줄줄이 나오면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고 한다.

"줄 수 있는 최상의 음악적 기회를 주자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은 클래식 공연을 하기에 최상의 울림을 갖춘 곳이거든요.

이런 곳에서 어린이들이 마림바나 피콜로 음색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겠지요.

"(김길려)
이번 작품은 편곡자 역할이 유독 큰 작품이다.

베토벤 원곡의 힘을 지키되,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난이도를 조절하는 게 이수연 편곡자의 고민이었다.

"관객이 베토벤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멜로디를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이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리듬적인 장난을 쳤죠. 우리 목표는 음악을 '가르친다'가 아니라 '경험하게 한다'였거든요.

"(이수연)
엄마 예술가들이 만든 'MSG 쏙 뺀' 베토벤에 빠져볼까
◇ "엄마는 출근하고 아빠는 재택, 이상한가요?"
'베토벤의 비밀노트'는 사회적 편견을 자연스럽게 건드리는 연출로도 눈길을 끈다.

주인공 '민서'의 엄마는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고 아빠는 재택근무를 한다.

민서는 엄마 성과 아빠 성을 동시에 따라 '박이민서'로 불린다.

김민정 연출은 "이제 모든 텍스트는 평등의 시대로 가야 하고, 특히 아이들에겐 공기처럼 스며들기를 바랐다"며 "엄마는 집에서 일하고 아빠는 나가서 돈 벌어온다는 규범 아닌 규범이 앞으로는 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민서가 바이올린 연습은 싫어한다는 설정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김 연출의 딸은 종종 '바이올린을 켜면 손도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다'며 축구를 하러 갔는데, 이런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냈다.

"아마 엄마라서 찾아낸 에피소드가 아닐까 해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머나먼 것일 수 있구나, 어떻게 하면 가까워지게 할까 고민하던 것이 이번 작품의 힘이 됐죠."(김민정)
엄마 예술가들이 만든 'MSG 쏙 뺀' 베토벤에 빠져볼까
◇ 엄마 예술가들의 팁은…"자유롭게 내버려 두세요"
이번 프로젝트로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저마다 커리어도 쟁쟁하다.

김민정 연출은 뮤지컬 '파리넬리', '번지점프를 하다'를 진두지휘했으며 김길려 음악감독은 '맘마미아!' 등 히트 뮤지컬 음악 전반을 책임졌다.

이수연 편곡자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마마 씨어터 등지에서 활약했다.

어린이를 위한 예술교육 팁을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자유롭게 내버려 두라는 답을 내놨다.

김민정 연출은 "딸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무리 방을 어지럽히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려도 그냥 뒀다.

그러다 학교에 가서 45분짜리 정해진 수업, 정해진 공간에서 교육받으니 흥미를 잃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예술교육을 하려면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지식 주입에 그쳐서는 안 되는데 참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길려 음악감독은 "부모님은 어릴 때 예술 분야에 있어서 저를 방임하셨다.

오히려 그게 지금 음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입시 시스템에 갇혀서 음악을 했다면 즐기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잘할지 알 수 없다.

부모는 그저 예술을 접할 기회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기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 했다.

이수연 편곡자는 "제 아이들은 음악인 자녀답게 팝, 재즈, 클래식, 동요까지 온갖 종류의 음악을 듣는다.

피아노 뚜껑을 열어둔 채 치든 말든 내버려 둔다.

그러니 음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더라. 언젠가 아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피아노 저음을 치는 걸 보고 놀랐다.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거들었다.

공연은 8월 3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다.

5세 이상 관람가.

엄마 예술가들이 만든 'MSG 쏙 뺀' 베토벤에 빠져볼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