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 '경제·안보' 위기…고심 깊어진 문 대통령, 여름휴가 취소
문재인 대통령이 29일부터 예정됐던 여름휴가를 전격 취소했다.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 결정 등 추가 경제 보복이 임박한 가운데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8월 초 개각 등 국내외적으로 챙겨야 할 현안이 산적해서다.

취임 후 첫 휴가 취소

청와대는 28일 “문 대통령이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예정된 하계 휴가를 취소했으며 이 기간 동안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직원들의 예정된 하계 휴가에 영향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정상 근무에도 불구하고 매주 월요일 열리는 수석·보좌관 회의는 소집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계획한 여름 휴가를 취소했다.

문 대통령의 여름휴가 취소는 취임 후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매년 7월 마지막 주에 닷새간 연차를 내고 여름휴가를 보내왔다. 임기 첫해에는 대전의 명소인 장태산 휴양림과 인근 군 시설을 시찰했으며 지난해에는 동계올림픽 홍보 차원에서 강원 평창에서 하루 묵은 뒤 경남 진해 잠수함 사령부를 방문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예정된 여름휴가를 취소하고 해당 보고를 수시로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6년 7월 청남대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집중 호우로 피해가 커지자 하루 만에 귀경해 수해 복구 상황을 점검했다.

일본 추가 경제 보복 등 현안 산적

문 대통령이 휴가를 전격 취소한 데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움직임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당초 진해 해군기지 등에서 휴가 구상을 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30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르면 내달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본의 추가 조치에 대해 상황별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까지 발생하면서 챙겨야 할 외교안보 현안들이 적지 않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전날 새벽 광주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문 대통령은 50% 안팎의 지지율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국정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와 외교 분야 난제들이 쌓이는 가운데 경제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마저 3개월 넘도록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등 국정 운영 여건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안이 많지만 원칙을 갖고 당당하게 대응해 간다는 게 대통령 방침”이라며 “시간을 갖고 풀어갈 수 있는 다른 현안과 달리 일본의 경제 보복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토로했다.

8·15 메시지 ‘주목’

한·일 관계가 격랑에 휩싸이면서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 규모에 따라 발언 수위가 최종 조율되겠지만 올해 경축사의 대일(對日) 메시지에 대한 주목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청와대는 이미 경축사에 담을 문 대통령의 메시지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초 예정된 개각 구상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당초 이번 개각에서는 9명 안팎의 장관급 인사들이 교체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인사청문회 부담으로 인한 ‘구인난’으로 7명 안팎으로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유동적이지만 인사청문회 때문에 인재 찾기가 만만치 않다”며 “당초 교체 대상 중 한두 명은 연말까지 유임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