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빨간 바지’ ‘몰아치기 달인’ ‘역전의 여왕…’.

김세영(26)은 별명이 많다. 우승을 해도 평범하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다. 그 덕분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K골프’ 군단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선수로 꼽힌다. 15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 메도스GC(파71·6550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마라톤클래식(총상금 175만달러)에서 거둔 투어 통산 9승째도 그랬다. 그는 20언더파를 넘기는 화끈한 몰아치기를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김세영은 이날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를 몰아쳤다. 그동안 보기는 1개로 막아 6언더파 65타를 적어냈다. 최종합계 22언더파 262타를 친 그는 2위 렉시 톰프슨(미국)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상금 26만2500달러(약 3억1000만원)를 챙겼다.


20언더파 이상 우승 세 번

이번 우승으로 김세영은 지난 5월 메디힐 챔피언십에 이어 시즌 2승째를 신고했다. 올 시즌 다승자는 고진영(24), 브룩 헨더슨(캐나다), 박성현(26)에 이어 김세영이 네 번째다.

김세영은 또 개인 통산 9승을 거두면서 최나연(9승)과 함께 LPGA투어 한국 선수 다승 부문 공동 4위로 올라섰다. 한국 선수 중 김세영보다 많이 우승한 선수는 박세리(25승), 박인비(19승), 신지애(11승) 등 세 명뿐이다.

김세영은 이번 대회를 포함해 세 번을 20언더파 이상으로 수확했다. 두 자릿수 언더파 스코어는 여섯 번. 2016년 JTBC파운더스컵에선 27언더파 261타를 쳤고, 지난해 손베리클래식에선 무려 31언더파 257타를 쳤다. 31언더파 257타는 역대 LPGA투어 최다 언더파, 최저타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불이 붙으면 적수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날도 톰프슨이 마지막 2개 홀에서 버디-이글을 기록하며 맹렬히 추격해왔으나 김세영은 15번홀(파4)까지 7타를 줄여 일찌감치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1998년 박세리가 세운 이 대회 최저타(23언더파·261타)에도 딱 1타가 모자랐다. 또 9승 중 4승이 연장전에서 나올 정도로 승부처에서 강하다. 그의 LPGA투어 첫 승은 2015년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에서 나왔다. 당시 연장전 상대는 ‘태국 골프 여제’ 에리야 쭈타누깐이었다. 2승째를 거둔 LPGA롯데챔피언십에선 환상의 이글 샷으로 ‘골프 여제’ 박인비(31)를 눌렀다.

김세영의 ‘강심장 DNA’는 어렸을 때부터 했던 태권도에서 나온다는 평가다. 그는 태권도 도장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기초 체력을 키웠다. 중학생이던 2007년 초청선수로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에선 “떨릴 줄 알았는데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로 대범했다.

K골프, 한 시즌 최다승 신기록 세우나

김세영과 박성현, 고진영이 2승을 따내고 ‘핫식스’ 이정은(23), 지은희(33), 양희영(30)이 각각 1승을 추가한 한국은 올 시즌 19개 대회 만에 9승을 합작했다. 1승만 더해도 지난해 거둔 승수보다 많아진다.

유독 홀수 해에 강했던 한국은 남은 대회에서 한 시즌 최다인 15승 돌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K골프’ 군단은 2015년과 2017년 한국 선수 한 시즌 최다 우승 기록인 15승을 달성했다.

남은 대회가 13개인 만큼 16승 고지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한국 선수는 올 시즌 47.4%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현 승률을 유지해도 최소 6승 이상 추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3.8% 이상이면 신기록인 16승 달성도 가능하다. 기존 강자인 박성현, 김세영과 더불어 상금랭킹 등에서 상위권에 있는 고진영, 이정은이 가세한 만큼 새 기록을 기대하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LPGA투어는 17일부터 신설 대회 다우그레이크레이크스베이인비테이셔널로 일정을 이어간다. 이후 2주 연속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 브리티시오픈이 열리고 스코틀랜드오픈이 잇달아 개최된다. 김세영은 “아직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는데, 지금 이 좋은 기운을 가져가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LPGA투어 신인상을 예약한 이정은이 14언더파 단독 4위를 기록했다. 1라운드를 공동선두로 시작했던 루키 전영인(19)은 9언더파 공동 11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이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