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수질·폐기물 독성 분석 전문기관, 핵심 부품 제조까지
"후배 공학도들, 창업의 바다로 뛰어들라"
폴리염화바이페닐류(PCBs). 이름조차 생소한 이 물질은 열에 잘 견디고 안정적인 화학 구조로 전봇대의 변압기 속 절연유로 널리 사용된 염소계 유기화합물이다.

하지만 암과 내분비계 이상 등을 일으킬 정도로 인체에 유해하면서도 분해가 매우 느려 생태계에 오랫동안 남아 피해를 일으키는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이다.

그리고 교수를 꿈꾸던 한 공학도의 인생을 흔들어놓은 물질이기도 하다.

김만기(37) 씨는 강원 원주시 상지대학교 환경공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2009년 가을,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학위를 딴 뒤 유학길에 올라 교수가 되는 길을 꿈꿨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젊을 때 창업에 도전하고픈 열정이 자리 잡았던 까닭이다.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그는 PCBs 분석 시장의 가능성에 패기를 더해 창업을 향한 발걸음을 힘껏 내디뎠다.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가진 실험실을 만들자'는 목표로 같은 과 학우 3명과 함께 뭉친 그는 2010년 강원예비청년창업자육성사업에 선정, 같은 해 4월 ㈜알렉스분석시험소의 대표가 됐다.

서용찬 상지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로부터 연구지도를 받고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전공인 절연유 PCBs 분석 분야에 도전했다.

전국에 200만개 넘게 퍼져있는 전봇대 변압기. 작은 드럼통처럼 생긴 변압기 속에는 과열로 인한 폭발을 막기 위해 절연유가 들어있고, 그 속에는 높은 비율로 PCBs가 함유돼 있다.

한국은 국제협약을 통해 2025년까지 PCBs를 절연유로 사용한 변압기를 전량 폐기해야 한다.

알렉스분석시험소는 절연유 속에 PCBs가 있는지 분석하는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김 대표의 발걸음은 자신만만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인증한 강원 유일의 PCBs 전문 분석기관일 정도로 기술과 전문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기술만 가진 공학도에게 시장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영업과 마케팅을 전혀 모르고 무작정 사업계획서만 들이밀려고 하니 업체에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죠"
그는 창업 초기 미숙함을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창업 종잣돈 2억원은 고가의 분석 장비를 사들이느라 대부분 동이 났고, 사업 입찰에는 번번이 떨어져 회사는 창업 첫해 783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락없는 적자였다.

열정으로 뭉친 4명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공공하수·산업폐수 처리시설과 마을 하수도의 수질과 생태 독성을 분석하는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여러 사업장에서 달콤한 유혹을 속삭였다.

오염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나온 것처럼 결과를 조작해 달라는 요구였다.

김 대표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굶고 망하더라도 거짓 측정은 할 수 없다'고 다짐하며 유혹을 뿌리쳤다.

결국 적은 사업장만이 알렉스분석시험소에 일을 맡겼다.

적자는 4년간 이어졌다.

남는 건 시간이니 회사는 끊임없이 현장을 돌며 수질을 분석했다.

업무 차량의 계기판은 1년에 5만㎞씩 올라갔다.

거짓 없고 정확한 그리고 꾸준한 분석을 여러 공공기관이 지켜보고 있었고 강원도, 정선군, 환경공단, 한강수계관리위원회 등이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거기에 절연유 PCBs 분석 사업까지 따내 2014년 회사는 매출 12억여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탄력을 받은 알렉스분석시험소는 실내 공기 질 측정, 건축자재 오염물질 방출 시험 등 다양한 시험 분석 분야로 사업을 넓혔고 직원은 16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교실 내 라돈 이슈가 전국에 터졌을 때 강원지역 대다수 학교의 분석을 맡을 만큼 신뢰받는 기업이 됐다.

원주지방환경청과 강원도지사,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도 따라왔다.

많게는 18억원까지, 평균 10억원 이상의 꾸준한 매출을 올리게 되면서 김 대표는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절연유 PCBs 분석 사업은 점차 줄어들어 2025년이면 국내에서 문을 닫는다"며 "분석을 뛰어넘어 연구개발 제조업에 도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분 분석 기기 속에는 '컬럼'이라는 가느다란 금속 실뭉치가 들어가는데, 국내에서는 만들지 못해 전량 수입하는 실정이다.

그는 각 분석 성분에 맞는 컬럼을 직접 제조하기로 마음먹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시제품 개발까지 마친 단계며 2024년까지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창업 9년 만에 20배 이상 매출 신장을 이루고, 또 회사를 안정시킬 수 있는 비결로 '사람'을 꼽는다.

적자에 허덕일 때 이를 견디게 해준 것도, 달콤한 거짓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게 해준 것도 모두 '동료들의 힘'인 까닭이다.

그는 "사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동료 직원들 덕분"이라며 "최근 개인 사정으로 퇴사한 1명을 빼면 아무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쭉 함께 가는 것이 내 자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후배 공학도들에게 창업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권했다.

그는 "진짜 기술과 욕심이 있다면 창업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며 "지금은 청년 창업 시대라고 할 만큼 지원 정책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력 외에도 경영, 영업, 마케팅도 철저히 준비해야 내가 겪은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