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사진이 하나 있다. 원 안에는 우리 전통 한옥의 모습이 담겨 있다. 왜곡이 심한 렌즈를 사용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사진가 겸 조각가 베른트 할프헤르가 서울 부암동의 석파정 실내를 사진으로 촬영한 뒤 구체(球體)에 입힌 ‘사진조각 석파정’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사진이면서도 입체 형태이기 때문에 ‘사진조각’이란 이름을 붙였다.

보통 사진은 네모난 2차원의 평면이어서 한 방향에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구(球)는 다르다. 어떤 위치에서도 볼 수 있고 그 위의 한 점에서 출발하면 무한히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다. 구체의 특성에 매료된 할프헤르는 1990년대부터 이런 작품을 만들어왔다.

작가는 평면을 구체로 만들기 위해 피사체를 파노라마 방식으로 360도 촬영한 뒤 이 사진들을 정교하게 잘라서 구체에 붙였다. 그렇게 하니, 평범한 피사체가, 우주의 행성과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예술행위는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대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갤러리나우 28일까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