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올랐다고 회사에 남게 되면 저의 신념이 무너집니다. (…) 부하 직원 중 여덟 명은 저를 따라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남자 일생의 중대사, 온 정성을 다해 일해볼 생각입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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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사진)은 1958년 11월 15일 가고시마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교토의 절연체 제조기업 쇼후공업에 입사한 뒤 3년 만에 과장이 된 그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견제하는 상사에 맞서 회사를 나왔다. 이후 독립해 교세라를 창업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책마을] 사심이 없는가, 동기가 선한가.…일본 '경영의 神'이 주문처럼 외운 두 가지 질문
평전 《마음에 사심은 없다》는 이나모리 회장이 퇴사와 창업을 앞둔 고민의 시기에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처음 공개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전기그룹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혼다자동차 창업자)와 더불어 ‘일본의 3대 기업가’로 꼽힌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은 수십 종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이 책이 차별화되는 건 이 편지처럼 최근 발견된 새로운 자료뿐 아니라 이나모리 회장의 인터뷰와 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통틀었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회사 등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경영인들의 일생을 그리는 작가로 변신한 기타 야스토시가 썼다.

책의 구조는 단순하다. 시간 순으로 이나모리 회장이 몸 담은 기업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응석받이 차남에 골목대장이던 어린 시절을 거쳐 대학 졸업 후 쇼후공업에 입사해 주목받았던 청년 시절을 다룬 1장에 이어 2장과 3장은 첫 회사인 교토세라믹(현 교세라) 창업 비화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워나간 경영 원칙을 담았다. 4장은 두 번째 회사 제2전전(현 KDDI)을 통한 새로운 도전, 5장은 고심 끝에 인수한 일본항공(JAL)을 회생시키는 과정을 따라간다.

최근 한국에서 아시아나항공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JAL을 되살리는 과정에 더 눈길이 간다. 채무가 2조3000억엔에 이르렀던 JAL이 회사갱생법을 신청한 것은 2010년 1월이었다. 구제금융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JAL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원했다. 당시 총리이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이나모리 회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그는 80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총리가 거듭 청하자 고민 끝에 수락한 그는 직원 세 명만 데리고 가서 JAL 회장에 취임했다. 그의 주도로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대규모 적자를 내던 회사는 1년2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2년8개월 만에 주식시장에 재상장됐다. JAL 회장으로 취임한 지 3년 만에 그는 교세라 명예회장이라는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JAL이 회생하기까지 그가 교세라와 KDDI를 이끌면서 틀을 세운 ‘아메바 경영’이 큰 역할을 했다. 단세포동물인 아메바는 모여서 커다란 원형을 유지한다. 이처럼 조직을 소규모 집단으로 나누고 그 집단의 리더를 중심으로 매출과 비용, 이익 확대의 방안과 목표를 스스로 정하게 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회사 경영 상태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경영 철학을 공유하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나온 결과다. ‘내가 어떻게 해야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는지’를 직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기업의 성패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철학과 가치라고 여겼다.

올해는 이나모리 회장이 교세라를 창업한 지 60년 되는 해다. 창업 첫해 매출 2600만엔이던 회사는 1조5770억엔(2018년 3월 기준) 규모로 성장했다. 초기 28명이던 직원은 7만5940명으로 늘었다. 그간 적자 기록은 한번도 남기지 않았다. 책에서 이나모리 회장의 삶과 도전, 회사의 부침과 성장을 그리면서 일관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의 경영철학이다.

저자는 그중 하나인 ‘인생이나 일의 결과=가치관×열의×능력’이란 방정식을 소개한다. 합이 아니라 곱의 연산이라는 것, 능력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마이너스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능력이나 열의가 있다 해도 결과는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이나모리 회장이 매번 스스로에게 한 질문은 두 가지였다. ‘동기가 선한가’, 그리고 ‘마음에 사심이 없는가’. 한국 기업가들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