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원유 등 실물자산에 간접투자하는 금융투자 상품에 ‘투자 적색경보’가 들어왔다. 경기 흐름에 민감한 실물자산 투자 상품들은 1, 2월 두 달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및 중국 경기 부양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로 ‘몸값’을 높였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 잇따라 나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짙어진 경기둔화 우려…구리·원유ETF '흔들'
브레이크 걸린 구리선물 ETF 상승세

지난 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지수펀드(ETF)인 ‘KODEX 구리선물(H)’은 25원(0.43%) 떨어진 577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ETF는 지난달 25일 5860원으로 마감하며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주춤하며 지난 6일부터는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2월 한때 10%에 육박했던 이 상품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8일 기준으로 8.05%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최근 들어 구리값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구리선물 가격 하락률의 2배 수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신한 인버스 2X 구리선물’ 상장지수증권(ETN)은 8일 1만4947주 거래됐다. 하루 거래량 기준으로 올 들어 최대다. 이 상품은 지난달 25일(종가 7900원) 이후 8거래일 연속 상승해 이날 8290원에 마감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선물 3개월물의 t당 가격은 지난해 말 5981달러에서 지난 1일 6524달러로 올랐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슬금슬금 떨어지면서 8일엔 6368달러로 마감했다.

LS 풍산 등 국제 구리가격 변동에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이달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LS와 풍산의 8일 종가는 각각 5만4600원과 2만9850원으로, 이달 들어 9.75%, 6.42% 떨어졌다.

횡보하는 유가 ETF

올 들어 지난달 중순까지 상승세를 탔던 국제 유가가 2월 하순부터 횡보세에 접어들면서 관련 ETF들의 성과도 지지부진하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1.83% 급등했던 ‘KODEX 원유선물(H)’은 이달 들어 0.70% 하락했다. ‘TIGER 원유선물 Enhanced’도 이달 0.71% 하락했다.

이들 ETF의 수익률을 결정짓는 국제 원유 가격(서부텍사스원유 기준)은 경기 부양 기대 등으로 연초 배럴당 46.5달러로 출발해 지난달 22일 연중 최고점인 57.2달러까지 올랐다. 이후 추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일 종가는 56.0달러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진 게 경기 연관성이 큰 실물자산 가격 조정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전선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구리는 주요 제조업종에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기초 소재다. 세계 경기 동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구리, 원유 등 실물자산 가격의 향방은 경기 전망에 대한 투자자들의 판단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 경기가 2분기 중 바닥을 찍고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1%로 낮추는 등 부정적 지표들이 잇따르자 경기 부정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잇따라 발표된 각국 경기지표엔 긍정적 흐름과 부정적 흐름이 뒤섞여 있어 경기에 근거한 시장 전망이 어려워졌다”며 “상품시장은 당분간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을 투자 대안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다만 금의 최근 대체재로 꼽히는 달러 가치가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