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의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격동의 조선'
이따금 옛일을 기록한 책을 읽는 일은 도움이 된다. 현재의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1888년에 내한한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S 게일의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책비)은 구한 말 우리의 모습을 기록한 보기 드문 책이다.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이 펴낸 다양한 책이 있었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이유가 있다. 그는 선교사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어느 학자에 못지않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 관련 논문과 40여 권이 넘는 국·영문 한국 서적을 펴낸 인물이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그를 두고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해박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파란 눈의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격동의 조선'
이 책의 원저는 1888년에 입국한 게일 선교사가 1898년에 《코리안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발로 뛰어서 쓴 기록물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첫인상, 상놈, 압록강, 빈곤에서 풍족까지뿐만 아니라 조선의 조랑말과 방방곡곡, 조선 보이, 양반, 조선 사람의 사고방식, 선교 관련 등의 소주제 밑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몇 대목을 소개한다. “조선의 고질병은 바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앉아서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는 이 나라”라고 서술한 부분이 있다. 그가 일 때문에 굳은살이 박인 손을 가진 곽씨라는 사람을 만난 이후에 그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을 정리한 대목이다.

“조선에서 ‘독립’이란 말은 새로운 개념”이라며 “단어 또한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그는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다른 존재로부터 분리된 오롯한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덧붙인다. 집단주의가 한민족뿐만 아니라 인간의 원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도 돋보인다. 그는 “서양 세계에서 넓은 국토에 집이 한 채 한 채 그렇게 서 있듯 개인도 자신의 책임하에 홀로 살아가는 반면 동방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집도 마을을 이루면서 반드시 함께 들어선다”고 소개한다.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개인주의라는 덕목은 근현대화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의 원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저자의 관찰기다.

“조선에는 제대로 된 나무가 전혀 없었다”며 “물론 과거에는 분명히 숲이었을 곳들이 일부 남아 있긴 했지만 나무로 빽빽이 들어선 곳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재산권의 부재가 가져온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 겹쳐졌다. 정말 보잘것없는 곳에서 우리가 일어서 오늘을 이루게 됐음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다.

공병호 < 공병호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