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물이 우주에 '두웅~둥'…"무중력은 행복과 실존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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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 총장 지낸 서명덕 화백, 9년 만에 개인전
6일까지 청작화랑에 20점 걸어
무중력에 착안해 제작한 정물
인물·누드·풍경화 등도 눈길
그림은 세상과 잇는 행복한 통로
하찮은 사물과 사람의 자취 좇아
매일 즐거운 기운을 화폭에 옮겨
6일까지 청작화랑에 20점 걸어
무중력에 착안해 제작한 정물
인물·누드·풍경화 등도 눈길
그림은 세상과 잇는 행복한 통로
하찮은 사물과 사람의 자취 좇아
매일 즐거운 기운을 화폭에 옮겨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상명대 총장을 지낸 서명덕 화백(68)은 요즘 ‘무중력’에 심취해 있다. 틈만 나면 우주 관련 서적을 들추고 공상과학(SF) 영화를 즐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물체를 아래로 당기는 힘(중력)이 없기 때문에 갖가지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3차원의 시각 공간을 4차원의 우주로 확장해 사람과 사물의 숭고한 실존을 색칠하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꽃과 벌거벗은 여인, 과일 등을 공중에 띄워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처럼 가장 이상적인 행복감(아파테이아)으로 채색했다. 그래서인지 사람과 사물들의 침묵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일흔을 앞둔 작가의 이런 발상은 여전히 우주를 배회하듯 기발하고 사뿐하다.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오는 6일까지 여는 서 화백의 개인전은 빛의 변화에 따른 사물의 외관을 좇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사람과 사물을 그려 행복의 의미와 실존적 가치를 반추하는 자리다.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사물의 실존적 세계관을 추구한 그는 정물화를 비롯해 누드화, 인물화, 풍경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연을 화폭에 복기하듯 20여 점을 풀어놨다.
상명대 총장 퇴임 뒤 계당장학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 화백은 9년 만의 전시여서인지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곧 존재의 원천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며 “점점 더 리얼리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화백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의성초, 경북중, 중동고를 다닐 때 사생대회에서 미술상을 휩쓸었다. 고3 시절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知)와 사랑》을 읽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왜 사서 고생하려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자식 이길 부모는 없다고 결국 1969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진학했다. 산업화가 본격화하던 시기였던 만큼 디자인에 대한 인기가 높았지만 순수미술에 더 끌렸다. 다시 서울대 대학원과 미국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을 거쳐 1980년 상명대에 부임했다. 학생들 걱정을 하면서도 그림이 더 고파서 물감 살 일을 궁리했다. 교수로 재직한 지 20년 만인 1999년 총장이 됐다. 8년간 상명대를 이끈 뒤에도 홍은동 화실에 틀어박혀 사실주의 화풍을 우직하게 고수하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인물작가회장을 맡아 한국 구상미술의 새길을 모색한 그의 치열함이 작품 속에 깃들어 있다.
화가로는 드물게 대학 총장까지 오른 그는 “그림은 세상과 자신을 잇는 행복한 통로”라고 했다. ‘행복한 사실주의자’를 자처한 그는 평생 하찮은 사물과 사람의 기억, 자취를 좇아왔다. 꽃과 화병, 백자달항아리, 술병 등 오랜 세월 사람의 무게를 이겨낸 일상 소재를 화면에 올려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불쾌하고 짜증나는 삶보다는 유쾌하고 즐거운 삶의 기운들을 화폭에 옮겼다. 수많은 색 조각을 계산된 부분에 적용해 사물의 입체성도 강조했다. ‘나는 색채만으로 원근법을 지배하고자 노력한다’는 폴 세잔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들이다. 서 화백은 “시간 속에 제멋대로 맡겨진 사물들을 시간으로부터 잠시 떼어내 공간에 재배치함으로써 사물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설명했다.
인물화 역시 깊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얼굴들을 에너지라는 감흥의 고리로 풀어낸다. 매일 오전 8시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는 서 화백은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4차원의 그림은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오는 6일까지 여는 서 화백의 개인전은 빛의 변화에 따른 사물의 외관을 좇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사람과 사물을 그려 행복의 의미와 실존적 가치를 반추하는 자리다.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사물의 실존적 세계관을 추구한 그는 정물화를 비롯해 누드화, 인물화, 풍경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연을 화폭에 복기하듯 20여 점을 풀어놨다.
상명대 총장 퇴임 뒤 계당장학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 화백은 9년 만의 전시여서인지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3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곧 존재의 원천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며 “점점 더 리얼리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화백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의성초, 경북중, 중동고를 다닐 때 사생대회에서 미술상을 휩쓸었다. 고3 시절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知)와 사랑》을 읽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왜 사서 고생하려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자식 이길 부모는 없다고 결국 1969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진학했다. 산업화가 본격화하던 시기였던 만큼 디자인에 대한 인기가 높았지만 순수미술에 더 끌렸다. 다시 서울대 대학원과 미국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을 거쳐 1980년 상명대에 부임했다. 학생들 걱정을 하면서도 그림이 더 고파서 물감 살 일을 궁리했다. 교수로 재직한 지 20년 만인 1999년 총장이 됐다. 8년간 상명대를 이끈 뒤에도 홍은동 화실에 틀어박혀 사실주의 화풍을 우직하게 고수하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인물작가회장을 맡아 한국 구상미술의 새길을 모색한 그의 치열함이 작품 속에 깃들어 있다.
화가로는 드물게 대학 총장까지 오른 그는 “그림은 세상과 자신을 잇는 행복한 통로”라고 했다. ‘행복한 사실주의자’를 자처한 그는 평생 하찮은 사물과 사람의 기억, 자취를 좇아왔다. 꽃과 화병, 백자달항아리, 술병 등 오랜 세월 사람의 무게를 이겨낸 일상 소재를 화면에 올려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불쾌하고 짜증나는 삶보다는 유쾌하고 즐거운 삶의 기운들을 화폭에 옮겼다. 수많은 색 조각을 계산된 부분에 적용해 사물의 입체성도 강조했다. ‘나는 색채만으로 원근법을 지배하고자 노력한다’는 폴 세잔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들이다. 서 화백은 “시간 속에 제멋대로 맡겨진 사물들을 시간으로부터 잠시 떼어내 공간에 재배치함으로써 사물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설명했다.
인물화 역시 깊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얼굴들을 에너지라는 감흥의 고리로 풀어낸다. 매일 오전 8시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는 서 화백은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4차원의 그림은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