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처 수장들이 30일 잇따라 컨틴전시 플랜(위기대응 비상계획)을 언급하는 등 증시의 추가 폭락을 막기 위해 구두개입에 나선 모양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여의도 CCMM 빌딩에서 열린 '2018 상생과 통일 포럼'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이 있다"며 "시장을 좀 더 예의주시하면서 앞으로 추이를 보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해외 기업설명회(IR), 기관투자가 역할 제고, 필요하면 일부 제도적 개선까지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증시 안정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위기대응 비상계획)을 면밀히 재점검해 필요 시 가동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구두개입으로 증시 안정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전날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자본시장 안정화 대책을 논의하고 증권 유관기관 중심으로 5천억원 이상 규모의 자금을 조성, 운용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당위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한편에서는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을 사례로 들어 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옹호하면서 최근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의 공포심리가 커진 상황에서 투자심리를 안정시키고 증시 안전판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정부 증시에 개입해야 하나…"심리 안정" vs "역효과"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국의 대응을 일단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 "5천억원이 당장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공포심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본시장에 대한 안정 의지를 보인 것 자체만으로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도 "지금처럼 시장이 위기 상황일 때에는 정부 차원에서 투자자 보호에 나서고 시스템도 안정시켜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태세 전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센터장은 "증권거래세 완화나 공매도 한시 금지 등이 다 필요한 시기이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위기 상황에서는 도입하는 정책들"이라며 "미중 무역분쟁과 외국인 매도로 시장이 크게 흔들린다면 정부가 나서서 시장 안정을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섣불리 개입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서 가격 방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주가 하락을 내다보고 풋옵션을 산 사람도 있을 텐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전성인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장이 그 자체의 힘으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증권 청산결제 때 유동성이 부족하지 않도록 한다든가 단기외채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등의 대비책 외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정부가 어떤 대책으로 시장을 통제하고 증시 급락을 방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며 "정부가 개입한다고 투자자들에게 기회가 가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정부 개입이 실제 증시 안정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과거에도 정부의 대응으로 증시 불안이 해소된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추가 대책을 주장했다.

황세운 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 투자심리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한 바 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대외 변수에 의한 하락인데 정부 개입을 통해 숨돌릴 틈을 주고 주가 하락이 적정 수준인지 재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너진 수급을 되돌리기 위해 증권거래세 완화를 고려할 만하다.

사업손실 준비금 제도를 부활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업손실 준비금 제도는 기업이 향후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당해 사업연도 이익의 일정 비율을 적립금으로 쌓아두면 그만큼을 비용으로 인식해 법인세를 공제해주는 제도로, 코스닥시장 초기 신규 상장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됐다가 2006년 폐지됐다.
정부 증시에 개입해야 하나…"심리 안정" vs "역효과"
반면 정부 개입에 반대하는 쪽은 과거 무리한 증시 부양책의 역효과 사례에 주목한다.

전성인 교수는 "자본시장 안정을 위한 5천억원 자금 조성은 증안기금(증시안정기금)이나 한국은행 특융(특별융자) 같이 과거에 실패로 돌아가 폐지된 제도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며 "어떻게 운용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렬 센터장은 "정부가 상황과 원인, 기업이 처한 대외 위험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없었다는 게 문제"라며 "시중의 막대한 유동자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오도록 세제 등을 보완할 필요도 있지만, 산업 성장을 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근원적인 경제·산업 정책을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