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자영업 대책이 또 예고됐다. 지난달 1차 대책에서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빠진 데 대해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민·관 태스크포스를 꾸려 추가 지원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도 자영업자들의 핵심 요구 사항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수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정부는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반대하는 주요 이유로 ‘낙인효과’를 들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어느 지역은 저임금 지역, 어느 업종은 저임금 업종으로 낙인이 찍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낮은 업종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지역별 위화감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사업자들이 폐업위기에 몰렸고, 많은 한계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는 마당에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업종·지역별 임금 차이가 상당히 벌어져 있다. 업종별 생산성과 수익성, 지역별 산업화 수준 등에 따라 임금 격차가 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2016년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정보서비스업은 1.5%인 데 비해 숙박·음식업은 35.5%, 농림어업은 46.2%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업종별 편차가 컸다. 지난해 서울과 제주의 임금소득은 30%가량 차이 났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최저임금 차등화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지역·업종 간의 이런 차이를 인정한 결과다. 일본은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종류가 240가지에 달한다.우리나라도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에 ‘최저임금은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차등 적용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저임금 업종 낙인찍기’라고 반대해 현실화하지 못했다. 지역·업종마다 임금을 결정하는 요인이 다양한데, ‘낙인찍기’라는 주장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시장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헤아리고 시장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장단과 여야 5당 대표 등 국회 측 인사들의 정상회담 동행은 불발되거나 ‘반쪽 동행’에 그칠 전망이다. 평양행 남북한 정상회담에 부정적 견해를 견지해온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뿐 아니라 국회의장단도 논의 끝에 이번 방북에 동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4·27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이 한국당 반대로 암초에 걸리자 ‘여야 대표 방북단’ 구성으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 했던 청와대의 전략이 반나절도 안돼 무위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나온다.◆靑 “정당 특별대표단으로 대우”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의 적극적인 참석을 당부했다. 특히 임 실장은 이 같은 제안이 단순히 문재인 대통령의 ‘들러리’가 아님을 강조하며 “초청하는 이분(여야 대표단)들을 별도로 국회·정당 특별대표단으로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겠다”면서 별도 일정 마련 계획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 국회·정당에서도 함께해 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며 “11일 정무수석을 통해 (각 당 대표를) 찾아뵙고 초청의 뜻을 설명드리겠다”고 말해 간곡하게 설득했다.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정당 대표자 분들이 원하는 북측 카운터파트너 기관 방문 등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각 당을 찾아갈 예정”이라고 말해 야당을 위한 ‘맞춤형 회담’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의 이 같은 발표 2시간여 전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지난 4·27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시기를 평양 정상회담 이후로 미루는 데 동의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비준동의안을 국회로 보내오면 충분히 논의하고 3차 (남북한) 정상회담이 끝난 후 결과를 보고 더 논의하기로 했다”며 “비준안 논의는 지금 시작하더라도 결론은 3차 남북한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서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초대장 받은 野 “가지 않겠다”하지만 9명으로 방북단을 꾸리겠다는 청와대의 구상은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서 불발됐다. 일단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주영·주승용 국회부의장, 한국당 소속인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국회의장단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의장실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의장단과 강 위원장 모두 정기국회와 국제회의 참석 등에 전념하기 위해 동행하지 않기로 하고 이 같은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다”며 “3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 국회회담이 열린다면 국회 의장단과 외통위원장이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 제안에 앞서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청와대 제안이 있기 전인 오전에도 방북 제안이 있을 경우를 전제한 기자들의 질문에 “과연 정당 대표들이 그렇게 갈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어떤 진전도 없는데 우리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국당은 청와대 제안 직후 다시 공식 입장문을 내고 “협상과 대화의 주체는 단순할수록 좋다”며 “행정부가 (북한 측과) 실질적 비핵화 추진 약속을 해오길 바란다”고 거절 입장을 재확인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안 논의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로 분류됐던 바른미래당도 손학규 대표가 불참하기로 했다.현재까지는 이해찬 민주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만 방북단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특별한 진전이 없는 한 ‘반쪽 방북단’이 되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바른미래당도 손학규 대표의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김삼화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전날 여야 대표들에게 문 의장을 통해 청와대 제안이 사전에 전달됐음을 밝혔다. 그는 “정상회담은 정부 책임하에 이뤄져야지 여야 당대표들까지 부르는 쇼로 만들려 하나”라며 “오늘 아침 안 간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음에도 임 실장이 또다시 초청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야당이 (정상회담에) 비협조한다’는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명문화한 합의문 등 일정한 성과가 나와야 야당을 움직일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박종필/박재원 기자 jp@hankyung.com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사진)은 ‘문재인 정부의 현주소’를 묻자 곧장 메모지에 세 가지 그래프를 그렸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마주 앉아 기자에게 강의하듯 국내 정치, 외교안보, 경제·사회 등 분야를 나눠 ‘진단서’를 적어 내려갔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정책기획위원회의 수장다운 모습이었다.◆“20년 집권? 정치 수준 높여야”정 위원장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을 얘기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정치를 주제로 운을 뗐다. 그는 ‘촛불 혁명’으로 창출된 문재인 정부의 정치 현실도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과거처럼 국회에서 폭력이 오가진 않지만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그는 이 같은 이유로 “정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민주당의 20년 집권은) 힘들다”고 했다.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정부가 최근 다시 꺼내든 ‘적폐청산’ 기조에 관해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마련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개입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국정원의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적폐청산은 사람을 처벌하는 대신 미래를 향한 문화와 제도를 마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남북한 관계를 두고는 “지금이 고비”라고 표현했다. 미·북 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섰지만 각국의 수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봤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협상 전략 중 하나”라고 풀이했다.◆‘김&장’ 갈등, 팀워크에 부적절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정책 틀을 마련해놓고 정책을 종합적으로 펴지 못해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문재인 정부의 브랜드처럼 자리잡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청와대가 단기 성과에 매몰돼 있다 보니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시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최근 정책 컨트롤타워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의미를 홍보하고 나섰지만 “타이밍이 늦은 것 같다”고 했다.이른바 ‘김&장’ 갈등에도 쓴소리를 가했다. 그는 장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의 불협화음과 관련, “실제로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만큼 내부에선 의견이 엇갈릴 수 있지만 외부에 그렇게 비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팀워크에 문제가 있다고 보일 수 있어 부적절했다”고 평했다.정 위원장의 이 같은 쓴소리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는 문 대통령의 핵심교수그룹 좌장으로 꼽힌다. 정 위원장은 18대 대선부터 문 대통령의 정책 자문 역할을 해왔다. 18대 대선 패배 후 결성된 자문그룹 ‘심천회’의 핵심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심천회에는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등이 속해 있다. 지근거리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에 관여해 일각에서는 그를 문 대통령의 ‘가정교사’로 칭하기도 했다.◆포용국가 위해 복지예산 2배↑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중·장기 국가 발전전략과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안착시키는 데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위원회 출범 1주년을 맞아 그는 “지난 5개월간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 비전인 ‘포용 국가’의 틀을 완성했다”며 “앞으로 ‘비전 2040’ 등의 국가 장기 비전을 마련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소득주도성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는 설명이다.포용 국가는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제시한 사회정책 분야의 국가 비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국민의 삶을 전 생애주기에 걸쳐 책임져야 한다”며 “그것이 포용 국가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정 위원장은 “한국의 사회정책이 굉장히 낙후돼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예로 들었다. 2015년 기준 한국은 10.1%지만 일본은 1980년, 유럽은 1967년에 10%를 넘었다며 우리보다 예산 투입 비중이 두 배나 높은 유럽과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그만큼 사회복지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 위원장은 “포용 국가를 위한 범부처 추진단을 세워 ‘국민 전 생애 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효과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국가재정전략회의와 연계해 정책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