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환영만찬… "생전 처음 밥도 같이 먹는 것" 감격
71세 딸, 99세 노모에 음식 먹여줘…접대원에 "우리 조카 많이 좀 달라"
[이산가족상봉] 반백년만에 함께 앉은 식탁엔 '식구의 情' 넘쳐
65년 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한 식탁에 마주 앉은 풍경은 마치 명절을 방불케 했다.

남북 이산가족을 위해 북측이 주최한 환영 만찬이 20일 오후 7시 17분부터 9시 19분까지 금강산호텔 연회장에서 열렸다.

89명의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은 이날 상봉한 북측 가족 185명과 함께 2시간 동안 저녁 식사를 같이하며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분단으로 반백 년이 훌쩍 넘게 갈라져 살아야 했던 가족들은 오랜만에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말 그대로 '식구(食口)의 정'을 담뿍 누렸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이 터졌고, 그동안 돌봐주고 챙겨주지 못한 세월이 아쉬운 듯 상대방의 입에 연신 음식을 넣어주기 바빴다.

남측의 김한일(91)씨는 만찬 중에도 북측의 여동생 김영화(76)씨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맥주는 잘 마시냐"는 한일씨의 물음에 영화씨는 잘 안 먹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남측의 맏언니 문현숙(91)씨와 북측의 여동생 영숙(79), 광숙(65)씨가 모인 테이블에서는 북측의 고모들이 현숙씨의 아들 김성훈(67)씨를 살갑게 챙겼다.

이들은 서빙하던 북측 접대원에게 "우리 조카 많이 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남측의 이금섬(92) 할머니는 북측 아들 리상철(71)씨에게 빵을 잘라 건네줬고, 오빠 김춘식(80)씨 곁에 꼭 붙어서 식사하던 김춘실(77)씨도 "오빠 시루떡 먹어, 맛있다오"하며 음식을 권했다.

남측 한신자(99) 할머니의 북측 딸 경영(71)씨는 고령으로 손이 떨려 젓가락질을 못 하는 노모에게 닭고기를 집어서 먹여 줬다.

한 할머니는 한 할머니대로 "어서 먹으라"며 딸들을 챙겼다.

여동생 신금순(70)씨 사진을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타난 신재천(92) 씨는 다른 가족에게 "생전 처음 밥도 같이 먹는 것"이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고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었다.

남측 차성태씨가 사촌지간인 북측 차성일씨와 잔을 부딪치고서 "이제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자 곧바로 성일씨는 "형님! 다같이 이렇게 만나서 살면 얼마나 좋겠어. 빨리 통일이 돼야지"라고 답했다.

김병오(88)씨와 조카손자 사이에도 "술 할 줄 알지?", "못 배웠습니다", "우리 조카 정말 어려 보인다"는 등 정다운 대화가 오갔다.

앞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첫 단체상봉을 가졌다.

음식과 술잔이 오가면서 만찬장 분위기는 단체상봉 때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남측 상봉단장인 박경서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이 "사랑"이라고 건배 구호를 선창하자 남북 이산가족들은 "평화"라고 답했다.

북측은 이날 만찬 메뉴로 팥소빵과 닭튀기(튀김의 북한말), 밥조개깨장무침, 청포종합냉채, 돼지고기 완자탕, 생선튀기 과일단초즙, 소고기 다짐구이, 버섯남새(채소)볶음, 오곡밥, 얼레지토장국, 수박, 단설기 등의 음식을 준비했다.

마실거리로는 자강도 강계포도술공장에서 만든 '인풍술'과 대동강 맥주, 금강산 샘물, 사이다, '은정차'라는 이름을 가진 녹차 등이 놓였다.

북측 접대 요원은 이날 메뉴에 대해 "영양학적으로 고려해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이날 만찬에서는 테이블 착석 방식이 조정되면서 각 가족에게 부여된 번호와 만찬장 테이블의 번호가 달라 가족들이 혼란을 겪는 해프닝도 있었다.

응급상황 발생 등에 신경을 쓰다 착석 방식에 대해 상봉단에게 충분히 사전설명이 전달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한적 측은 설명했다.

환영 만찬을 끝으로 이날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 일정은 종료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