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에너지기업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국내 증권사들 사이에 맺은 채권매매 계약의 효력을 둘러싼 소송전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에 이어 신영증권현대차증권에 ‘부실화한 채권의 매수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영증권은 이르면 이번주 중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매 이행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정했다”며 “채권 매매 약속을 담은 녹취록 등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난 5월 중국 대형 에너지기업인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CERCG)이 자회사의 채무원리금 지급보증 의무 이행에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신영증권과 유안타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CERCG 관련 ABCP 115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증권이 가장 많은 500억원, BNK투자증권과 KB증권도 200억원씩 투자했다. 이 ABCP의 기초자산은 CERCG가 지급보증을 제공한 또 다른 자회사가 찍은 사모사채다.

신영증권과 유안타증권은 현대차증권이 각각 100억원, 150억원 규모의 ABCP 물량을 되사가겠다고 사전에 약속했기 때문에 이 채권을 매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ABCP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자 현대차증권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겠다고 발뺌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차증권은 해당 거래의 효력을 문제 삼고 있다. 두 증권사와의 거래가 금융투자협회의 채권거래 플랫폼인 ‘K본드’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전화 등을 통한 예약매매는 장외에서 주로 거래가 이뤄지는 채권시장의 특징적인 거래 형태”라며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거래 방식을 부정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안타증권은 지난 11일 관련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