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국내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절반을 외부 위탁운용사에 맡기기로 하면서 시장과 기업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달 말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 도입을 앞두고 커지고 있는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 속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투자일임업자가 연금이나 공제회 등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본지 7월10일자 A21면 참조

국민연금, 의결권 절반 넘긴다는데… 운용사들 제 목소리 낼지는 '의문'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운용을 위탁받은 민간 운용사들이 의결권도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다. 국민연금은 131조원(지난 4월 말 기준)에 달하는 국내 주식 투자액 중 71조원은 직접 운용하고 60조원은 민간 운용사에 맡기고 있지만 모든 의결권은 직접 행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후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 추천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는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될 것을 우려해왔다.

국민연금이 절반이나마 의결권 행사를 외부에 위탁하기로 함에 따라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다소 개선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종목당 대략 절반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절반은 위탁운용사를 통해 간접 보유하고 있다. 간접 보유분에 대한 의결권을 외부에 맡기면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분율은 절반으로 낮아진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 지분을 9.90% 보유하고 있는데,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분율이 5% 밑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기업들의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 지분만으로도 충분히 기업들을 압박할 수 있어서다. 상법상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지분 3% 이상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돈을 위탁받은 운용사들이 기업 의결권 및 주주권 행사에서 국민연금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기금운용본부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방향을 정하면 위탁운용사들은 대체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 시행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의 구체적 실행 방안이라 할 수 있는 세부지침을 공개한다.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과 재계 우려를 고려해 당분간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주주대표소송처럼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는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주활동 범위와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9명으로 구성돼 있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14명의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예정대로 오는 26일이나 27일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의결,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