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진단 일루미나 등 다국적사 제품보다 100배 이상 정확
조직검사 않고도 암 진단 가능
이달 임상 돌입...내년 말 출시 예정
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많은 업체가 액체생검에 뛰어들고 있다. 암조직에서 떨어져 혈액 속을 돌아다니는 암 유전자인 'ctDNA'를 검출해 암을 진단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ctDNA가 극소량이라는 점이다. 혈액 10mL에 정상유전자가 100만 개 있으면 ctDNA는 최소 1개에서 최대 5000개까지 존재한다. 암 진단키트의 성능은 아주 적은 양의 ctDNA를 검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검출 민감도'라고 한다.
2016년 설립된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진캐스트'가 개발한 암 진단 키트 '지씨 캔서 키트(GC Cancer Kit)'의 검출 민감도는 0.0001%다. 즉 유전자 100만 개 가운데 1개의 암 유전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주요 업체의 제품에 비해 성능이 월등하다. 로슈진단이 0.1%, 일루미나가 0.01%다. 로슈진단보다 1000배, 일루미나보다 100배 정확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놀라운 기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병철 진캐스트 연구소장(사진)은 "우리가 개발한 '선별적 유전자 증폭 시스템(IDPS)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IDPS는 여러 유전자가 혼재하고 있는 혈액에서 암 유전자를 선별해 증폭함으로써 암 유전자 변이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유전자 증폭이란 같은 유전자를 무수히 늘리는 것이다. 암 유전자 1개를 수백 개로 늘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쉽게 하는 작업이다.
IDPS가 특별한 까닭은 자체 개발한 효소를 활용해 암 유전자만 증폭한다는 점이다. 혈액을 키트에 떨어뜨리면 키트에 있는 효소와 반응해 암 유전자가 많아지고 이를 분석해 유전자의 어떤 부분에 변이가 일어났는지 확인한다. 기존 제품은 암 유전자뿐 아니라 정상 유전자도 증폭했다. 이 소장은 "암 유전자와 정상 유전자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만 다른데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은 불필요하게 모든 요소를 분석해야 했다"며 "정상 유전자가 증폭되면 암 유전자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어 기존 기술은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효소를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이 단 7개월이라는 사실이다. 이 소장은 유전공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30여 년간 이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은 게 아니라 그동안 쌓인 내공이 바탕이 된 것. 그는 "유전자 변이 유무를 잘 구별할 수 있고 극미량도 검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효소가 무엇이 있을까 궁리한 끝에 효소를 만들 수 있었다"며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쪽을 열심히 천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제품이 일으킬 파급 효과는 기대할 만하다. 혈액 10mL로 2시간 30분 만에 진단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용도 영상 촬영이나 조직검사 등 기존 검사에 드는 150만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높은 확률로 암을 조기 진단할 뿐 아니라 치료 중인 암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정확도가 우수하기 때문에 조직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
또 암 유전자 변이를 파악할 수 있어 암의 특성을 고려한 항암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겉보기에 동일한 암조직이라도 유전자 변이 양상이 다를 경우 항암제를 복합적으로 처방해야 치료효과가 좋다. 이 소장은 "암 환자의 특성에 적합한 항암제를 처방 받을 확률은 20%에 불과하다"며 "정밀의료가 눈 앞에 다가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캐스트는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이 진행한 연구자용 임상시험에서 기존 검사가 놓친 암 환자를 진단하는 결과를 얻었다. 지난해 6월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이번 달부터 허가용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이 소장은 "국내외 인허가를 동시 추진할 것"이라며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캐스트는 지난 5월 52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장은 "암 진단 관련 시장 규모는 미국만 30조원에 달한다"며 "연 매출 1조원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라고 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