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사내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3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총상금 890만달러)에서다. 안병훈(27·CJ대한통운·사진)은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고,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환희에 겨워 포효했다. 복귀 첫 승에 목마른 타이거 우즈(미국)는 갑갑함과 기대가 교차한 듯 거푸 입맛을 다셨다.

안병훈은 이날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파72·6759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디섐보에게 분패했다. 2016년 5월 취리히클래식에 이어 두 번째 연장전 패배다. 준우승 기록만 두 번으로 늘었다.

안병훈은 나흘 내내 60타대(68-67-69-69)를 쳐 15언더파를 적어낸 디섐보, 카일 스탠리(미국)와 함께 3자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 첫 홀에서 보기를 범한 스탠리가 먼저 탈락했다. 하지만 안병훈은 두 번째 연장 홀에서 3m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디섐보에게 밀려 PGA투어 생애 첫 승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안병훈은 “연장전에서 두 개의 파를 잡았는데 디섐보가 버디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샷과 퍼트 모두 감이 좋아 다음 대회에서도 열심히 해볼 계획”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병훈은 유럽투어를 거쳐 지난해부터 미국 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PGA 챔피언 꿈에 도전하고 있다. 유럽투어에서는 2015년 메이저 대회(BMW챔피언십)를 제패하며 신인상까지 받았다.

디섐보는 통산 2승을 올리며 자신의 ‘특별함’을 다시 한번 골프계에 각인시켰다. 디섐보는 ‘필드 위의 과학자’ ‘괴짜 골퍼’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개성파 골퍼다. 자신이 숭배하는 ‘골프의 전설’ 벤 호건 스타일의 헌팅캡을 쓰고 경기에 나선다. 길이가 똑같은 아이언을 쓰며, 퍼터 그립을 왼팔에 바짝 붙여 스트로크를 하는 ‘팔뚝퍼팅’을 구사한다. 모두 ‘변종’스타일이어서 골프계의 많은 이들이 ‘주류가 득세 중인 PGA투어에선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며 반신반의해왔다. 그는 그러나 이 ‘소수파 골프’로 2시즌 만에 우승과 준우승을 2회씩 따냈고, 3위도 한 번 했다. 시즌 페덱스컵랭킹 포인트도 4위까지 올라갔다. 그는 “대회 내내 샷이 안 좋아 고생했는데, 퍼팅과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 잘 풀려 믿기지 않는 우승을 했다”며 기뻐했다.

우즈는 또다시 우승하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와 5타차 공동 7위를 달리며 ‘이번엔!’을 외쳤지만 결국 역부족을 드러냈다. 메모리얼 토너먼트는 우즈가 통산 79승 가운데 5승을 올린 우승 텃밭이다. 우즈는 전반 보기 없이 두 타를 줄이며 선두와의 격차를 한때 4타차까지 좁혔다. 하지만 후반 첫 홀(10번홀)에서 1m도 채 안 되는 파퍼트를 놓치며 3퍼트를 한 이후부터 들쭉날쭉한 경기를 하면서 2개의 보기를 추가했다.

우즈의 롱게임은 전성기를 방불케 했다. 4라운드 동안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올리는 게임 능력을 나타내는 지수(SG: tee to green)가 출전 선수 73명 중 1위에 올랐다. 반면 퍼팅은 73명 중 꼴찌나 마찬가지인 72위에 그쳤다. 우즈는 2~3라운드에 2m 이내의 퍼팅 7개를 놓친 데 이어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3번, 10번, 16번홀에서 1~3m 내외의 퍼트를 어이없게 놓쳤다. 우즈는 “퍼팅은 아쉽지만 샷이 좋았다. 앞으로 출전할 US오픈을 위해서 좋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