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손예진은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잇달아 흥행시키며 유일무이 멜로퀸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해적'(2014), '비밀은 없다'(2015), '덕혜옹주'(2016)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왔으나 지난 10여 년간 그의 정통 멜로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업계에서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장르가 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작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찾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충족시킬 만한 시나리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예진은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로 컴백한 소감과 또 하나의 손예진표 멜로물을 탄생시킨 비결 등에 대해 털어놨다.
"그동안 마음에 딱 와닿는 작품이 없었어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좋아해주신 분이 정말 많은데 그 작품들과 결이 다른 감동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나리오를 보고는 '이 작품이다' 싶었죠."
14일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세상을 떠난 수아(손예진 분)가 비의 계절인 장마가 시작될 때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와 남편 우진(소지섭 분)과 두 번째 사랑을 맺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원작과 일본판 영화의 탄탄한 스토리는 유지하되 코믹한 요소들을 곳곳에 첨가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초등학생 아들의 비중도 커졌고, 웃음 포인트가 많다 보니 후반부 뭉클한 감동이 배가됐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의 의미는 변질되고 퇴색돼요. 이 영화는 우리가 잊고 지나가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저도 진짜 사랑이란 뭘까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손예진은 풋풋한 학창 시절 첫사랑부터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의 모성애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깊은 눈빛과 섬세한 감정 표현, 눈물 연기는 절정에 올랐다. 1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손예진의 미모 또한 극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했다.
"캐릭터의 감정이 세지 않아서 저는 힘을 빼고 한 발치 떨어져 있었어요. 오히려 제가 '이런 감정을 더 보여줘야지' 했다가는 독이 될 것 같았거든요. 수아의 감정이 절제되고 여백이 많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많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모든 감정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그려보는 게 저의 목적이었죠."
극 중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수아는 아들에게 청소, 빨래, 요리 등을 알려준다. 헤어짐을 앞둔 모자의 절절한 사랑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손예진 역시 "엄마와 약속했다. 아빠를 지켜주기로"라는 아들의 대사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굉장히 슬픈 장면에서 배우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관객이 슬퍼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감정을 얼마큼 보여줘야 관객이 함께 슬퍼하며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죠.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그걸 아니까 오히려 더 고민이 많아졌어요." 수아가 없는 동안 우진과 지호는 수아의 빈자리를 느끼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계란 프라이를 태우고 셔츠의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 출근,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수아의 사진에 뽀뽀를 하는 건 습관이 됐다.
"두 사람에게 사랑받는 수아가 부러웠어요.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한 집안의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이 생겼죠. 하지만 아직까지 엄마가 되는 건 상상이 안 돼요. 제가 누군가를 챙겨줄 정도의 사람일지 잘 모르겠어요."
이들의 사랑을 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한국 영화계에 기근이었던 멜로 영화가 올봄 관객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흥행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클래식'은 그 당시에만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한 감성이라 좋았어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역시 지금 이 시점에 찍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