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9세기 유럽의 성장 원동력은 '계몽주의'
18세기 중·후반 영국을 시작으로 서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서유럽은 ‘맬서스의 덫’인 인구·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은 왜 다른 곳이 아닌 서구에서 일어났을까. 역사학·경제사학자들은 서유럽과 그 밖의 지역, 특히 동아시아와 경제 발전 차이가 크게 벌어진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가 언제부터 어떤 요인으로 시작됐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이 주제에 대해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저술 중 하나가 전통적 유럽 중심 사관을 뒤엎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대표주자 케네스 포메란츠가 2000년 발간한 《대분기》다. 국내에도 2016년 번역·출간돼 주목받았다. 포메란츠에 따르면 18세기까지 영국과 중국 양쯔강 삼각주 지역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세계”였고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 등으로 ‘생태적 곤경’에 처한 것도 비슷했다. 여기서 영국은 석탄과 식민지 자원이라는 ‘두 가지 축복’으로 생태적 제약을 극복했다. ‘대분기’는 지리적·환경적인 요인에 따른 ‘우연’의 산물인 셈이다. 포메란츠는 이 책에서 15세기 또는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화와 제도, 시장 등에서 유럽의 내재적인 우위와 장점을 찾는 서구 학계의 전통 이론들을 반박했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르는 《성장의 문화》에서 다시 ‘유럽만의 문화’에 주목한다. 모키르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위대한 풍요’라고 부르는 근대적 경제 성장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의 구성 요소인 신념, 가치, 선호의 급격한 전환에 의해 초래됐다. 17세기 후반 등장한 계몽주의는 15세기 말이나 16세기 초부터 지속해온 유럽의 지적 엘리트 문화에서 일어난 변화의 결정체였다. 자연현상을 탐구하고 연구해 활용 가능한 자연규칙을 찾아내 이해하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생산활동에 적용하면 물질적 부가 증가하고 인간의 삶이 계속해서 나아질 것이란 믿음은 19세기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문화적 돌파구가 됐다.

저자는 과학기술사와 지식발전사를 되돌아보며 근대 초기(1500~1700년)로 알려진 시기에 유럽과 중국이 현대까지 지속된 기술과 경제의 커다란 격차가 생길 만큼 왜 달랐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과학, 수학 등 ‘유용한 지식’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계몽주의와 16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자유롭고 개방된 아이디어 시장, ‘편지 공화국’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의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중국에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유럽이 나머지 세계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계몽주의가 과학과 기술 발전에 미친 파급력이었다.

저자는 계몽주의에 매우 혁신적이고 보완적인 두 가지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는 지식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인류의 물질적 조건을 증진하는 데 사용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와 기득권층은 부자나 권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사상이 결합해 아이디어 시장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계몽주의는 1750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경제적 변환을 가능하게 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