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외풍 막고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
캐나다 슐러 감독 "머리 감독, 단일팀 감독으로 최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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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빠르게 하나가 됐다.

새러 머리(30·캐나다) 감독이 정치적인 부담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이다.

머리 감독은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이끄는 백지선(51·영어명 짐 팩) 감독의 추천으로 2014년 9월 여자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머리 감독의 나이는 26살로 파격적 선임이었다.

감독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 감독이었다.

그런데도 백 감독이 그를 추천한 배경에는 머리 감독의 아버지이자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 감독을 역임한 앤디 머리 감독이 있었다.

앤디 머리는 NHL에서 로스앤젤레스 킹스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사령탑을 지낸 명장으로 유명하다.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던 새러 머리 감독은 미국에 있는 아버지와 매일 전화로 1시간씩 통화하면서 조언을 구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머리 감독은 성장했다.

머리 감독은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4부리그에서 5전 전승 우승을 일궈내며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한 단계 도약을 일궈냈다.

머리 감독에게는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적인 남북 단일팀 총감독을 맡게 됐다.

함께 손발을 맞출 시간은 고작 2주 정도였다.

여기에다 북한 선수 3명 이상을 게임 엔트리에 넣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장이라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머리 감독은 지혜롭게, 소신 있게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는 "선수를 고르는 것은 내 권한이다. 내가 원하는 선수만 경기에 뛰게 될 것"이라는 말로 흔들리는 선수들을 안정시켰다.

머리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북한 선수를 기용하기보다는 정수현처럼 실력 있는 선수를 중용하며 부족한 전력을 채웠다.

머리 감독은 올림픽 첫 경기를 앞둔 지난 9일 "우리는 정치적인 주장을 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출사표를 밝혔다.

머리 감독이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단일팀은 정치적인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빠르게 하나가 됐다.

단일팀은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세계적인 강호 스위스, 스웨덴에 0-8로 힘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지난 14일 일본전에서 랜디 희수 그리핀이 단일팀의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터트렸다.

스위스와 '리턴매치'에서 0-2로 잘 싸운 단일팀은 20일 스웨덴과 7∼8위 결정전에서 한수진이 만회골을 넣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대회 전, 캐나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인 로라 슐러(48)는 단일팀의 사령탑으로 머리 감독이 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2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팀을 하나로 묶는데 머리 감독만 한 지도자가 없다는 게 슐러 감독의 설명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머리 감독은 "슐러는 미국 미네소타대 시절 내 코치였다. 슐러의 말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 상황에서 가장 준비된 감독인지는 모르지만, 단일팀이라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머리 감독의 모교인 미국 아이스하키 명문 미네소타대에는 러시아, 독일,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그들과 함께 뛰면서 머리 감독은 팀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팀을 하나로 묶어내는 슐러의 지도력을 지켜본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머리 감독은 "아버지가 큰 도움이 됐다"며 "대한아이스하키협회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내 결정을 지지해줬다. 모든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