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마리 로랑생 '코코 샤넬의 초상화'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은 20세기 초 유럽 사회에서 예술가로 일하면서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간 신여성이었다. 입체파 창시자 조르주 브라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 ‘세탁선(Bateau Lavoir)’을 수시로 드나들며 단순한 형태와 감미로운 색조로 슬픔을 표현한 특유의 미학세계를 개척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의 주인공이자 그의 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23년 완성한 이 그림은 세계적 의상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초상화다. 로랑생이 무대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 샤넬에게 직접 주문을 받아 제작했다. 푸른 드레스를 입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포즈로 의자에 기대앉은 샤넬의 모습을 관능적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나른한 듯 피곤한 샤넬의 표정에서는 뭔가 쫓기는 듯한 중압감과 고독감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샤넬은 이 초상화의 인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과 닮지 않은 그림이라는 게 이유였다. 어쩌면 샤넬은 외로운 분위기의 초상화보다 자신을 진취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