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폭로
여자 단원에게 안마시키고 자신의 여관방으로 호출도
성추행 저지른 이윤택 연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근신
내달 1일 개막 '노숙의 시' 취소
김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린 글에서 10여 년 전 지방 공연 당시 자신이 겪었던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다. 가해자는 이 연출이다. 김 대표는 당시 이 연출이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연습 중이나 휴식 때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고 사건 당일도 자신을 여관방으로 호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있었다.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고 적었다. 김 대표는 이후 이 연출이 자신을 추행했고 ‘더는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방을 나왔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선배쯤인 것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페이스북 글을 맺었다. 김 대표는 이 연출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당시 공연했던 연극이 이 연출의 대표작 ‘오구’였고 지방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곳이 이 연출의 거점인 밀양이라고 언급한 데서 가해자가 이 연출임을 암시했다.
이 연출은 이날 “지난 잘못을 반성한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근신하겠다”는 입장을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통해 전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 연출의 지휘로 내달 1일부터 무대에 올리기로 했던 ‘노숙의 시’ 공연을 취소했다. 하지만 ‘성의 없는 사과’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향후 활동과 관련한 명확한 태도나 명시적 사과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연출은 1986년 부산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한 뒤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며 국내 연극계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적인 극 양식을 개척하고 독특한 무대미학을 구현했다는 평가로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대상 등을 받았다.
그의 성추문에 대한 구설은 연극계에 암암리에 파다했다. 과거 국립극단과 작업할 때 극단 직원을 추행한 논란도 있었다. 국립극단은 당시 사건이 공론화되길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 연출을 향후 제작에 참여시키지 않기로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연극계는 하루종일 들썩였다. 김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폭로글은 12시간여 만에 1200명이 넘는 페이스북 이용자의 공감을 받고 280여 회 공유됐다. 지난 11일엔 유명 배우 이명행이 과거 성추행 논란에 휩싸여 출연 중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중도 하차했다. 한 극단 관계자는 “예술계 선배라는 권위에 취하고 배우 캐스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등을 무기 삼아 후배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은 연극계 권위자들이 반성하고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