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확 바뀐 선수단 분위기…춤추고 장난치며 올림픽 즐겨
빙속 여제 이상화도 "난 나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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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하면 링에서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

1982년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복싱연맹(WBA) 라이트급 챔피언전에 출전하기 위해 출국길에 오른 복싱 선수 故 김덕구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자신을 응원해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실제로 14라운드까지 버티다 상대선수 레이 맨시니에게 턱을 강타당한 뒤 의식을 잃었고, 뇌사상태 끝에 사망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나선 태극전사들은 개막 전 재야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부터 정신교육을 받았다.

당시 백 소장은 '대표선수가 가져야 할 올바른 국가관', '축구는 왜 우리 민족의 국기인가' 등의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 국제대회는 한국 선수들에게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선수들은 국민을 대표해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책무를 맡았다.

경기 결과에 따라 그 선수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전쟁에 나서는 군인처럼 비장함으로 가득 찼다.

웃음 짓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선수들은 올림픽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외국에서 자란 선수들은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다.

미국에서 태어난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민유라(23)는 지난 7일 강릉선수촌 입촌식에서 '쾌지나칭칭나네'에 맞춰 가운데로 뛰어나와 춤을 추는 등 선수단 분위기를 이끌었다.

9일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열린 개회식에도 참석해 각국 선수들과 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제대로 즐겼다.

호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피겨 페어 감강찬(23)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회식에서 방송카메라가 비추자 두 팔을 덩실덩실 흔들며 춤을 췄다.

당일 오전에 열린 피겨스케이팅 단체전(팀 이벤트) 페어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경기 후 밝게 웃었다.

성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엔조이 평창' 부담 내려놓고 올림픽 즐기는 한국 선수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막내 축에 속하는 김예진(19·한국체대 입학 예정)은 지난 8일 북한 정광범(17)과 훈련 도중 외모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던 일화를 소개해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무거워질 수 있었던 남북 합동 훈련을 신세대 특유의 농담과 장난으로 허물어뜨렸다.
'엔조이 평창' 부담 내려놓고 올림픽 즐기는 한국 선수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 간판 이상화(29·스포츠토토)도 일찌감치 평창올림픽의 목표를 '즐기면서 도전하는 것'으로 잡았다.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일본)와 경쟁구도로 양국 취재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상화는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하겠다고 되뇌고 있다.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도 '난 나야'라는 글과 환하게 웃는 자신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상화 개인 지도자인 캐나다 대표팀 케빈 크로켓 코치는 "이상화에게 최대한 즐기면서 경기에 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