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져야 날 수 있다.”

직원 10명 남짓한 ‘컨텐츠랩 비보’란 회사 홈페이지에 가면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회사는 방송인 송은이가 자칭 ‘팬츠 CEO(바지사장)’라 부르며 운영하고 있다. 이 말이 실현된 걸까. 기획자 송은이는 어디에나 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쉽게 도달하는 가벼움으로 높고 멀리 날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초 예능 트렌드가 여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짠테크(짠돌이+재테크)’ 열풍을 일으킨 ‘김생민의 영수증’은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였다. 그러다 독립 팟캐스트가 됐고, 입소문이 나며 지상파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엔 숨은 조력자 송은이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엔 갑작스레 ‘셀럽파이브’(사진)가 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송은이와 함께 여성 예능인 김신영 안영미 신봉선 김영희가 결성한 그룹이다. 격정적인 군무와 함께 제목도 ‘셀럽파이브(셀럽이 되고 싶어)’인 노래를 힘차게 부른다. 웹예능 ‘판벌려’에서 공개한 이들의 영상에 네티즌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200만 뷰를 돌파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라는 가사가 현실이 된 것처럼 말이다.

‘콘텐츠 자유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누군가 정해놓은 방식대로 가지 않는다. 팟캐스트든, 유튜브든 발 닿는 곳 어디든 무대로 만든다. 내용에도 제한이 없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 좋은 대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가벼운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중은 고정된 패턴을 벗어난 콘텐츠에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 방송사, 대형 기획사 중심의 콘텐츠 업계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콘텐츠 자유인의 탄생은 역설적이게도 고착화된 권력 구조에서 비롯됐다. 남성 예능인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방송에서 이들은 설 자리가 넓지 않았다. 송은이도 유명 연예인이었지만 고정 프로그램을 맡기 어려웠다. 같은 고민에 빠진 김숙과 함께 스스로 무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음악 시장에도 균열이 생기며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음원 사이트 상위권엔 처음 들어보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멜로망스’ ‘장덕철’ ‘문문’ 등이다. 유명 가수들이 앨범을 내도 신인 가수들의 순위는 굳건하기만 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기존 공식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대형 소속사의 오디션을 보고, 선발 후 계약을 맺는 과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고, 이후 작지만 자신들에게 맞는 소속사를 찾아갔다. 대형 소속사에 집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술집 떼창 영상’이 큰 화제가 되며 100위권 밖에서 1위로 차트 역주행한 장덕철 사례는 이런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역동성의 근저에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의 발달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이를 자신의 무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자유인의 탄생이다. ‘B급’이란 편견에도 날것 그대로를 들이밀 줄 아는 호기로움은 대중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전 권력 구조에선 보기 힘들었던 점이 있다. 컨텐츠랩 비보의 홈페이지에 있는 또 하나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파트너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우리의 날갯짓이 바람이 돼 누군가의 새로운 비상이 되길 바랍니다.”

조력자로서 김생민, 김숙을 더 돋보이게 하고, 김신영의 아이디어를 함께 이루기 위해 셀럽파이브에 동참한 송은이의 철학이 담긴 말인 듯하다. 신인 가수들처럼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려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이나 가수 지망생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콘텐츠 권력의 중심이 되려는 게 아니라 함께 이루려 하고, 타인에게 희망의 길을 터주는 것. 콘텐츠 자유인이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