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게임개발사인 블루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적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었다. 하지만 올해 이 회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탈바꿈했다. 블루홀이 지난 4월 출시한 PC게임 ‘배틀그라운드’가 소위 글로벌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배틀그라운드의 글로벌 판매량은 2400만 장으로 한국 게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블루홀의 기업가치는 약 5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식 배달 모바일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마찬가지다. 2011년 당시 매출 4억원, 영업적자 1억원을 기록한 작은 회사였지만 최근 투자 라운드에서 기업가치를 68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국내 배달시장에서 ‘배달의민족’은 압도적인 1위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블루홀과 배달의민족 ‘성공신화’의 숨은 조력자로 벤처캐피털(VC)을 꼽는다. 적자 상태 기업의 미래를 보고 과감하게 베팅한 VC 투자가 있었기에 이들 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지나 한국의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블루홀 PC게임 ‘배틀그라운드’
블루홀 PC게임 ‘배틀그라운드’
유니콘을 키운 마중물 ‘모태펀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해 투자는 필수다.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VC 투자금은 주로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사다리펀드), 산업은행 등 정책·민간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흘러나온다. 이들이 벤처 육성을 위해 VC에 자금을 투입하고 VC는 다시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이 중 가장 큰 정책금융기관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8개 정부 부처에서 자금을 출자받고 이 자금을 VC에 투입한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4조2000억원(회수 재원 포함)가량을 VC에 출자했고, 모태펀드 자금을 바탕으로 VC들이 만든 펀드는 532개, 재원은 16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조성된 VC펀드 자금은 유니콘을 키우는 데 쓰인다. 블루홀 역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모태펀드 자금을 받아 집행하는 VC들의 돈 372억원을 받았다. 가장 많이 투자받은 시점인 2011년 매출은 거의 없었고, 영업손실만 8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VC들은 블루홀이 국내에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을 개발할 수 있는 3~4개 업체 중 하나라는 점, 네오위즈게임즈 공동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을 비롯해 개발인력의 경험과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점 등 미래가치를 보고 회사에 베팅했다.

우아한형제들, 송금플랫폼 ‘토스’ 개발사인 비바리퍼블리카, 테슬라 상장 1호 기업을 노리는 카페24 등 쟁쟁한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겪던 당시 모태펀드의 자금을 받은 VC들에게 투자받아 현재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다.
(좌)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우) 송금 앱 토스
(좌)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우) 송금 앱 토스
스타트업 폐업 줄고, 고용창출 늘어

모태펀드의 자금을 받은 기업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고용창출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블레이드’를 개발한 넷게임즈는 모태펀드 자금을 받은 VC인 컴퍼니케이파트너스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았다. 당시 회사의 매출은 0원에 가까웠고, 직원은 50명 정도였다. 하지만 블레이드의 성공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각각 256억원, 103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직원은 250명까지 증가했다.

우아한형제들 역시 우수 고용창출 사례로 늘 거론된다. 초기 투자유치 시점인 2011년 16명이던 직원 숫자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680명으로 늘어났다. 투자유치 이후 425배의 고용이 창출된 셈이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모태펀드 자금이 간접적으로 투입된 청년창업기업(39세 이하 창업자) 83개, 창업초기기업(창업 3년 이내) 237개의 1년간 신규 고용은 각각 72%, 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중소기업의 고용증가율 0.0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모태펀드 자금이 투입될 경우 회사의 생존율도 높아진다. 창업기업 생존율은 일반적으로 1년차 기업이 62.4%, 3년차 기업이 38.8% 정도다. 하지만 모태펀드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2005년부터 2015년 8월까지 1979개사를 조사한 결과 폐업 업체는 144개에 불과했다. 생존율은 93%에 달한다.

한 VC 심사역은 “한국의 벤처투자는 2005년 모태펀드 설립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모태펀드에서 자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많은 VC가 생겨나고, 경쟁하면서 양질의 벤처 생태계가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창업 생태계 만드는 벤처캐피털] '숨은 조력자' 벤처캐피털 있었다
더 늘어난 ‘마중물’

모태펀드의 성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올해 추가경정예산 8600억원이 모태펀드에 투입되면서 내년까지 민간자금을 포함해 1조4000억원가량의 관련 투자펀드가 조성될 계획이다. 한국벤처투자는 이 자금을 운용할 VC 운용사 48곳을 선정한 상태다.

자금이 투입되는 기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청년창업기업부터 실패를 경험한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재기지원펀드, 지방 기업을 돕는 지방투자펀드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기업 투자를 진행한다.

2004년 5498억원이던 모태펀드 자펀드 규모는 지난해 3조1998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내년 추가경정예산 효과로 또 한 번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용성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정부 주도 아래 늘어나고 있는 마중물들은 주로 창업 초기기업에 투자되고 있다”며 “VC들이 특유의 모험정신을 발휘해 실적이 없지만 미래가 있는 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