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의 대가’ ‘인물화의 천재’로 불리는 구자승 화백(76·사진)은 평생 하찮은 사물과 사람의 기억, 자취를 좇아왔다. 색바랜 주전자, 술병, 보자기, 도자기 등 오랜 세월 사람의 무게를 이겨낸 일상의 소재를 화면에 올려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감성의 그물망에 걸려든 평범한 사람들 모습도 환희와 희망으로 되살려냈다. 그래서인지 물기 가득 머금은 화폭은 현실 세계를 펼쳐 놓은 듯 이야기가 가득하다.

오는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하는 구 화백의 회고전은 구상회화의 시원을 찾아 긴 여행을 하며 사람과 사물의 영혼과 호흡을 붓끝에서 느껴보는 자리다.

2007년 상명대 교수에서 퇴임한 뒤 충북 장호원에 은둔해 사는 구 화백은 오랜만에 여는 전시회를 앞두고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난 15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곧 존재의 원천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며 “점점 더 리얼리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시회 제목을 ‘힘의 응집 리얼리즘’으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극사실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동양적 세계관을 추구한 그는 정물, 인물, 풍경을 넘나들며 화업을 이끌어준 우연과 인연들을 화폭에 복기하듯 90여 점을 풀어놓는다.
구자승 화백의 2017년작 ‘회고’.
구자승 화백의 2017년작 ‘회고’.
◆부모 반대 불구 그림으로 승부

구 화백의 집안은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정3품 벼슬을 지낸 증조부는 난을 잘 쳤고 동아일보 기자였던 아버지(구인회)도 그림을 잘 그렸다. 하지만 7남매 중 장남인 그가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의 반대는 대단했다. 부모님 몰래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넣고 입학해야 했다. 집안의 지원이 끊겨 물감 살 일을 걱정해야 했던 시절이다. 군대 다녀온 뒤로는 학교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그때 만난 여학생(장지원 화백)과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졸업 후 홍대부속여고와 상명대 강사로 일한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은 캐나다 토론토대 총장이었다. 1981년 방한한 토론토대 총장은 그가 부인과 함께 캐나다 온타리오미대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도왔다. 그때가 마흔한 살이었다. 1980년대 추상미술 붐이 한창일 때도 그는 사실주의적 창작세계를 고집했다. 일본 미국 캐나다 등 국제 화단을 누비며 구상주의 화풍을 우직하게 고수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꿈을 키웠다. 2010년 말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미술부문 ‘올해의 최고예술가상’을 받았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신미술회장, 한국 인물작가회장 등을 맡으며 한국 구상미술의 새길을 모색한 그의 치열함이 작품 속에 깃들어 있다.

◆“캔버스 앞에 있을 때 살아 있는 느낌”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정물화와 달리 대상의 독창적 화면 구성에 강조점을 두는 게 특징이다. 빈 술병 또는 꽃병이 주는 수직의 느낌과 탁자의 수평적 구도로 구성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실재감을 더한다.

구 화백은 “시간 속에 제멋대로 맡겨진 사물들을 시간으로부터 잠시 떼어내 공간에 재배치함으로써 사물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설명했다. 인물화 역시 깊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얼굴들을 에너지라는 감흥의 고리로 풀어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 이홍구 전 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역대 한국은행 총재 등의 초상화도 그의 작품이다.

지금도 작업실에서 매일 8~10시간을 보낸다는 구 화백은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림은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몸이 작업을 지배해야죠. 일한테 지면 작품이고 뭐고 끝장이에요. 일을 가지고 놀아야 자신은 물론 보는 사람도 즐겁기 마련입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02)580-13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