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신의 일본 주식 이야기] 산업용 로봇생산업체 파낙을 알면 일본 증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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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389.25엔(1.73%) 오르며 2만2937.60엔에 마감했다. 일본 증시는 1992년 1월9일 이후 25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경제의 회복세를 배경으로 일본 주식에 대한 내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덕분이다. 한국에서도 일본 증시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일본 현지에서 주식 거래를 하고 있는 개인 투자자인 박혁신 씨의 ‘일본 주식 이야기’를 연재한다.
일본 파낙을 보면 진짜 ‘일본 기업’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의 끝자락인 야마나시현 오시노무라. 울창한 삼림 속에 노랑색의 건물군들이 눈길을 끈다. 주식회사 파낙(FANUC)의 본사 건물이다. 노랑색은 파낙의 회사 컬러이다.
옐로 컬러에 대한 파낙의 집착은 매우 강하다. 공장 건물은 물론 공장내 로봇 운송용 차량과 영업용 트럭 색깔도 노랑색이다. 외부 손님들이 파낙을 방문하면, 노랑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노랑색 물수건을 가져다 준다.
파낙은 후지쓰(富士通)의 사업부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미국 애플과 독일 자동차 메이커 등 글로벌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산업용 로봇을 공급하는 세계적인 로봇메이커로 성장했다. 파낙은 세계 NC공작기계(수치제어장치를 결합한 자동화 공작 기계) 시장의 8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30%, 배당성향 60%로 최근 일본 주가 급등의 주역 상장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낙의 기술이나 기업 정보는 거의 공개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다. 이 회사는 2016회계연도에 매출 5,369억 4200만엔, 영업이익 1,532억 1700만엔, 순익 1,276억9700만엔을 기록했다. 올 11월 현재 시가총액은 5조5,034억엔에 달한다. 파낙이 왜 이렇게 강한 기업이 되었는지를 분석해 보면 일본 기업의 숨은 실력을 알 수 있다. 일본 제조기업들이 강한 이유는 뭘까.
파낙은 1972년 이나바 세이우에몬 사장이 후지쓰에서 NC사업부 등을 떼어내 독립하면서 출범했다. ‘FANUC’ 이란 회사명도 후지쓰에서 따온 것이 아니고, ‘Factory Automation NUmerical Control’의 머릿글자이다.
이나바 사장은 도쿄대 공학박사 출신이다. 그는 후지쓰에 입사한 뒤 파낙 설립 당시 부사장으로, 그 다음해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파낙은 산업용 로봇 개발에 착수해 현재 세계 최강의 산업용 로봇 메이커의 자리에 올랐다.
이나바 사장은 철저한 업무와 이익 추구 경영을 실현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인사권을 행사해 파낙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사 주식의 42%를 보유했던 후지쓰조차 이나바 사장의 경영 방침에 어떠한 간섭도 못 했다고 한다.
이나바 사장은 재임 시절 1만엔짜리 가격 상담도 자신에게 직접 보고를 받고 결정했다. 회사 입사시험도 없고 직접 면접만으로 신입사원 채용을 결정하는 등 수 많은 에피소드 낳은 경영자이다. 이나바 사장은 당대에 회사를 세계 1위의 산업용 로봇 메이커로 키운 뒤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상태이다.
파낙은 1972년 설립됐으나 그 뿌리를 찾아가면, 메이지 10년(18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토 출신 후루카와 이치베에의 도치기현 구리광산으로부터 사업이 시작된다. 일본의 재벌가문으로 꼽히는 후루카와는 한번 폐광된 광산에서 구리광맥 채굴에 성공, 후루카와광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후루카와광업은 1884년에 일본 전국 구리 생산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회사 성장 과정에서 광산 개발에 필요한 기계설비의 자체 생산을 위해 1886년 후루카와전기공업을, 1918년에는 후루카와기계금속을 설립했다. 두 회사 모두 지금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회사로 거래된다.
후루카와전기공업은 1923년에 독일의 지멘스와 자본, 기술제휴를 맺고 후지전기(富士電機)로 변신한다. 1935년에 후지전기의 전화부 소관업무를 분리해 후지쓰가 출범하게 된다. 이후 1972년에 파낙이 분리돼 독립회사로 탄생했다. 이후 파낙은 후지쓰의 ‘도깨비 방망이’로 불렸다. 후지쓰가 자금난에 봉착할 때마다 파낙의 주식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 5만 여개에 달한다. 그중 70% 가량이 종업원 300인 이하 중소기업이다. 파낙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파낙뿐 아니라 일본 회사들은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변신했다. 현재 잘 나가는 일본 기업들 대부분이 갑자기 생긴 회사들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장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세계의 완성품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제조기업들은 튼튼한 기술력과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일본 제조기업의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 기업을 이해하면, 일본 산업과 주식시장도 보인다.
박혁신 < 재일 파이낸셜플래너 >
■ 필자 박혁신은 1990년대에 일본에 유학가 25여년 동안 살면서 현지에서 돈을 벌고 있다. 아르바이트, 식당 및 레스토랑 경영, 주식 및 부동산 투자 등을 했다. 일본에서 독학으로 파이낸셜플래너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한때 주식투자로 꽤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요즘도 일본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고 종목을 분석 중이다.
일본 파낙을 보면 진짜 ‘일본 기업’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의 끝자락인 야마나시현 오시노무라. 울창한 삼림 속에 노랑색의 건물군들이 눈길을 끈다. 주식회사 파낙(FANUC)의 본사 건물이다. 노랑색은 파낙의 회사 컬러이다.
옐로 컬러에 대한 파낙의 집착은 매우 강하다. 공장 건물은 물론 공장내 로봇 운송용 차량과 영업용 트럭 색깔도 노랑색이다. 외부 손님들이 파낙을 방문하면, 노랑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노랑색 물수건을 가져다 준다.
파낙은 후지쓰(富士通)의 사업부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미국 애플과 독일 자동차 메이커 등 글로벌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산업용 로봇을 공급하는 세계적인 로봇메이커로 성장했다. 파낙은 세계 NC공작기계(수치제어장치를 결합한 자동화 공작 기계) 시장의 8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30%, 배당성향 60%로 최근 일본 주가 급등의 주역 상장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낙의 기술이나 기업 정보는 거의 공개되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다. 이 회사는 2016회계연도에 매출 5,369억 4200만엔, 영업이익 1,532억 1700만엔, 순익 1,276억9700만엔을 기록했다. 올 11월 현재 시가총액은 5조5,034억엔에 달한다. 파낙이 왜 이렇게 강한 기업이 되었는지를 분석해 보면 일본 기업의 숨은 실력을 알 수 있다. 일본 제조기업들이 강한 이유는 뭘까.
파낙은 1972년 이나바 세이우에몬 사장이 후지쓰에서 NC사업부 등을 떼어내 독립하면서 출범했다. ‘FANUC’ 이란 회사명도 후지쓰에서 따온 것이 아니고, ‘Factory Automation NUmerical Control’의 머릿글자이다.
이나바 사장은 도쿄대 공학박사 출신이다. 그는 후지쓰에 입사한 뒤 파낙 설립 당시 부사장으로, 그 다음해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파낙은 산업용 로봇 개발에 착수해 현재 세계 최강의 산업용 로봇 메이커의 자리에 올랐다.
이나바 사장은 철저한 업무와 이익 추구 경영을 실현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인사권을 행사해 파낙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사 주식의 42%를 보유했던 후지쓰조차 이나바 사장의 경영 방침에 어떠한 간섭도 못 했다고 한다.
이나바 사장은 재임 시절 1만엔짜리 가격 상담도 자신에게 직접 보고를 받고 결정했다. 회사 입사시험도 없고 직접 면접만으로 신입사원 채용을 결정하는 등 수 많은 에피소드 낳은 경영자이다. 이나바 사장은 당대에 회사를 세계 1위의 산업용 로봇 메이커로 키운 뒤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상태이다.
파낙은 1972년 설립됐으나 그 뿌리를 찾아가면, 메이지 10년(18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토 출신 후루카와 이치베에의 도치기현 구리광산으로부터 사업이 시작된다. 일본의 재벌가문으로 꼽히는 후루카와는 한번 폐광된 광산에서 구리광맥 채굴에 성공, 후루카와광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후루카와광업은 1884년에 일본 전국 구리 생산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회사 성장 과정에서 광산 개발에 필요한 기계설비의 자체 생산을 위해 1886년 후루카와전기공업을, 1918년에는 후루카와기계금속을 설립했다. 두 회사 모두 지금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회사로 거래된다.
후루카와전기공업은 1923년에 독일의 지멘스와 자본, 기술제휴를 맺고 후지전기(富士電機)로 변신한다. 1935년에 후지전기의 전화부 소관업무를 분리해 후지쓰가 출범하게 된다. 이후 1972년에 파낙이 분리돼 독립회사로 탄생했다. 이후 파낙은 후지쓰의 ‘도깨비 방망이’로 불렸다. 후지쓰가 자금난에 봉착할 때마다 파낙의 주식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 5만 여개에 달한다. 그중 70% 가량이 종업원 300인 이하 중소기업이다. 파낙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았다. 파낙뿐 아니라 일본 회사들은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롭게 변신했다. 현재 잘 나가는 일본 기업들 대부분이 갑자기 생긴 회사들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장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세계의 완성품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제조기업들은 튼튼한 기술력과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일본 제조기업의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 기업을 이해하면, 일본 산업과 주식시장도 보인다.
박혁신 < 재일 파이낸셜플래너 >
■ 필자 박혁신은 1990년대에 일본에 유학가 25여년 동안 살면서 현지에서 돈을 벌고 있다. 아르바이트, 식당 및 레스토랑 경영, 주식 및 부동산 투자 등을 했다. 일본에서 독학으로 파이낸셜플래너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한때 주식투자로 꽤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요즘도 일본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고 종목을 분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