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지’ 김세영(24·미래에셋)이 벙커속 풀잎 하나 때문에 2벌타를 먹었다. ‘벌타의 기습‘ 전, 그는 10언더파 선두를 달렸다.

김세영은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TPC쿠알라룸푸르(파71)에서 열린 LPGA 투어 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 2라운드에서 6언더파 65타를 쳤다. 버디 9개를 잡아내고 더블 보기 1개,보기 1개를 내줬다. 중간합계 8언더파를 기록한 그는 11언더파 단독 선두 펑샨샨(중국)에 3타 뒤진 단독 4위로 2라운드를 마쳤다.

김세영은 이날 천둥번개로 경기가 4시간이나 지연됐다가 속개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6타를 줄이는 불꽃타를 휘둘렀다. 두 개의 악재만 없었더라면 펑샨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었을 만큼 샷감과 퍼트감이 모두 좋았다.

첫 번째 악재는 말레이시아 골프장 특유의 천둥번개였다. 대회가 열릴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선수들을 맥빠지게 하는 이 불청객이 김세영의 흐름도 끊었다. 8번 홀까지만해도 버디 4개 4언더파를 달리던 김세영은 4시간 여 경기중단 후 다시 시작한 첫 번째 홀인 9번 홀에서 ‘기분나쁜’ 보기를 범했다. 달아올랐던 근육이 모두 식어있던 때였다. 하지만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샷감은 오래가지 않아 다시 살아났다. 10번 홀부터 16번 홀까지 5개의 버디를 잡아낸 것이다. 이 고공행진에 브레이크를 건 두 번째 악재가 17번 홀(파3)에서 튀어나왔다. 상황은 이랬다.

티샷한 공이 벙커에 들어갔고,김세영이 벙커샷을 하기전 공 뒤에 작은 풀잎 하나를 발견했다. 오전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바람과 함께 날라든 풀잎이었다. 그는 아무생각없이 그 잎사귀를 집어 공중에 날려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자 동반자였던 브리타니 린시컴(미국)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너 그거 돌을 치운 거야? 아니면 풀을 치운거야?”라고 물었다.

그렇게 2벌타를 먹고 말았다. 정교한 벙커샷으로 파를 세이브했지만 5타로 기록됐다. 10언더파는 8언더파로 내려오고 말았다.

김세영은 그러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직 2개 라운드가 남아 있다. 그 벌타에는 개의치 않겠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김세영은 브리타니 린시컴의 지적에 따라 골프 규칙 13-4의 적용을 받았다. 골퍼는 같은 해저드(벙커 포함)안에 놓여 있는 루즈 임페디먼트(loose impediments)를 접촉하거나 움직여서는 안되며,이를 어겼을 경우 2벌타를 받는다는 룰이다. 천둥번개로 인한 경기지연으로 전반에 1타, 벙커에 날아든 잎사귀로 후반에 2벌타,총 3타를 잃었으니 이날은 김세영에게 ‘억세게도 운이 좋지 않은 날’이 된 셈이다.

김세영이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불운을 떨쳐내고 뒤집기 한판승을 만들어낼지가 관심이다. 김세영은 ‘역전의 여왕’이다. 국내 투어 5승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6승 가운데 매치플레이 방식인 로레나 오초아 챔피언십을 제외한 스트로크 대회 10승을 모두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이번에도 역전승에 성공하면 11번째 역전승이 된다. 김세영은 지난 5월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시즌 1승,통산 6승째를 올린 이후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

박성현(24)은 버디 5개, 보기 3개로 2타를 줄여 5언더파 공동 15위다. 박성현과 함께 세계랭킹 1위,올해의 선수상 경쟁을 펼치는 유소연(27) 도 4타를 덜어내 3언더파 공동 23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지난주 8년만에 감격의 챔피언 트로피를 안은 베테랑 지은희(31)는 버디 1개, 보기 2개로 1타를 잃어 4언더파 공동 19위로 미끄럼을 탔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